노론과 소론의 뿌리는 서인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서인은 선조시기 동인과의 대립된 붕당으로 인조반종 이후 남인과 공존 체제를 유지하다 현종 당시 예송논쟁으로 대립하였습니다. 숙종 당시 1680년 경신환국으로 권력을 장악한 서인이 남인의 처벌을 놓고 송시열 주도의 노론은 철저한 제거와 강경한 명분, 윤증 중심의 온건한 처벌과 실용적 접근을 추장하며 타협을 중시하면서 분열하였습니다. 특히 송시열과 윤증간의 개인적 갈등인 윤증의 부친 윤선거의 묘지명 문제를 둘러싼 논쟁(희나시비)에서 송시열과 윤증이 대립이 결정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