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신장군은 가야출신이지만 누이가 진골출신인 29대 태종 무열왕인 김춘추와 혼인함으로써 대장군의 지위에 올라 삼국통일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김춘추가 외교전에 능했다면 김유신은 실전에 능한 대장군이었습니다. 김유신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엇갈립니다. 삼국통일을 이룩한 명장이자 대장군이라는 평가와 함께 권력을 위해 자기의 두 여동생을 김춘추에게 시집보냈을 뿐만아니라 여동생의 딸을 자기 아내로 맞은 것이나 아들 원술이 당나라에 대패하여 살아돌아오자 조카인 문무왕에게 원술의 목을 치라고 요청한 것 등에서 상반된 평가가 내려지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민족의 반역자라고 단재 신채호는 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