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
제 1차 출전(1592년 5월 7~8일) : 제 1차 출전에서는 옥포,합포,적진포 3차에 걸쳐 일본함 42척을 격파하며 승리를 거둔다.
제 2차 출전 (1592년 5월 29일~6월7일): 제 2차 출전에서는 사천,당포,당항포,율포에서 4차에 걸쳐 일본함 72척을 격파했으며 전라우수영 함대도 합류하여 판옥선 50여척, 보조선 100여척, 병력 1만의 수준으로 전력이 증강되기에 이른다.
제 3차 출전 (1592년 7월 8~10일) : 제 3차 출전에서는 7월 6일 출전을 감행하여 8일에는 한산도에서 9일에는 안골포에서 연이어 승리하여 일본함 76척을 깨뜨리는 전과를 거두었다. 이 해전이 바로 그 유명한 한산도 대첩이다.
제 4차 출전 (1592년 9월 1일) : 제 4차 출전에서는 부산포에 집결되어 있던 일본 함선 430여척에 공격을 가하여 100여척의 함선을 격침하였다. 이에 따라 일본군의 해상 활동은 더욱 위축되어 일본-부산간의 보급로 확보와 해안 기지 보호에만 급급하였고 이후 오랜 기간 남해에서는 해전다운 해전을 찾아 볼 수 없었다.
제 5차 출전(1597년 9월 16일) : 명량해전,
조선 수군이 승리하여 제해권을 회복한 전투이다. 패잔 전선 13척으로 적선 133척 격파하였으며, 이로 인해 일본군 수륙병진책이 좌절되었다.
제 6차 출전(1598년 11월 19일) : 제 6차출전에서는 노량 바다에서 이순신장군이 왜구를 물리친 해전이다. 노량해전에서 왜구의 총탄에 이순신장군이 전사하였으며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며 아군의 사기를 떨어뜨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