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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1.04

신라시대의 신분제도인 골품제도에 대해서 궁금합니다.

과거 우리나라 역사 중에서 신라시대는 골품제도라는 신분제도가 있어 성골과 진골, 6두품으로 신분을 나누었는데 이 골품제도란 어떤 것이었는지 신라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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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흡족한바구미271
    흡족한바구미27123.01.04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 제도는 신라의 국가성장과정에서 생긴 역사적 산물이었다. 즉, 신라는 연맹왕국(聯盟王國)에서 귀족국가로 바뀌어가고 있던 시기에 정복, 병합된 각지의 크고 작은 성읍국가(城邑國家) 또는 연맹왕국의 지배층을 왕경(王京)인 경주(慶州)에 이주시키고 이들을 중앙의 지배체제 속에 편입시켰다. 이때 이들 세력의 등급·서열을 정하기 위한 목적으로 골품제도가 제정되었다.다시 말하면, 신라국가가 다양한 귀족세력을 재편성하기 위해 제정한 것이었다. 신라는 이렇게 함으로써 지배체제를 구성하는 한편, 지방세력도 통제할 수 있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골품제도(骨品制度))]


  • 신라의 골품제도

    신라는 중앙 집권 국가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내물왕 이후 김씨 왕족이 왕위를 세습하였다. 김씨 왕족은 왕권을 강화하면서 폐쇄적 신분 제도인 골품 제도를 마련하여 통치 기반을 구축하였다.
    골품제도는 각 족장 세력을 통합, 편제한 것이었는데, 그 세력의 크기에 따라 두품의 신분이 주어졌으며, 왕족은 성골, 진골이 되었다. 종래의 족장 세력이었던 일반 귀족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세력 크기에 따라 두품을 주었는데, 6~1두품이 여기에 해당한다.
    무열왕 이후에는 진골 출신에서 처음으로 왕이 나오면서 성골 출신의 왕은 사라지고, 1~3두품도 점차 유명무실해져 일반 평민과 비슷해졌다.
    골품은 개인의 신분뿐만 아니라 그 친족의 등급도 표시하는 것이며, 골품에 따라 정치, 사회, 일상생활이 규제되었다. 예를 들면, 제1골이 제2골과 결혼을 하지 않았다라든가, 결혼을 하여도 첩으로 삼았다는 표현이 <신당서>라는 책에 기록되어 있다.
    신라의 관등 조직은 골품제도와 관련을 맺으면서 편성되었다. 신라의 골품제는 개인의 신분과 친족의 등급을 표시한 것으로, 신라인들은 골품에 따라 사회 활동과 정치 활동의 범위가 결정되었다. 진골은 최고 관등인 이벌찬까지, 6두품은 6위인 아찬까지, 5두품은 10위인 대나마까지, 4두품은 12위인 대사까지 진급할 수 있었다.
    따라서 6두품은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대아찬에 오를 수 없었다.
    신라 공복의 색깔은 골품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관등에 의해 결정되었다. 그러므로 진골은 자색만 입는 것이 아니라 자색을 입을 수 있는 골품이 진골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진골은 모든 관직이 가능하기 때문에 그 관등에 따라 자색, 비색, 청색, 황색 등 모든 옷을 입을 수가 있다.
    정치적 출세나 일상생활에 특권과 제약이 부여된 골품제도는 6두품 계층의 불만을 가져왔으며, 특히 혜공왕 이후 크게 동요하게 되어 신라 말기 사회 혼란을 가져오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골품제도는 개인의 혈통의 높고 낮음에 따라 정치적인 출세를 포함하여 결혼, 가옥의 규모 등 여러 특권과 제약이 가해지는것인데, 신라의 국가형성기에 만들어지면서 6세기 초 이미 법제화 되었으며 삼국의 통일을 거치면서 멸망까지 약 400년동안 신라사회를 규제하는 근본으로 작용하여 그 기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골품제도는 신라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역사적 산물로 신라는 연맹왕국에서 귀족국가로 바뀌는 시기에 정복하고 병합된 크고 작은 단위들의 성읍국가나 연맹왕국의 지배층을 왕경이었던 경주에 이주시켜 중앙 지배체제속에 편입을 시키는 방식을 활용하는데, 이 세력의 등급과 서열을 정리하기 위해 골품제도가 생겼습니다.

    신라를 구성하고있는 요소들은 여섯명의 씨족이었는데 처음 세력의 대소와 강약에는 큰 차별화를 가지고있었으며 습량, 사량의 씨족이 가장 큰 힘을 가지고 있었으며 다음으로 본피 , 한지모량, 습비였으며 그들은 약한세력을 가지고있었지만 병합 된 각각의 지방의 족장 세력들이 경주로 넘어오자 어쩔수없이 재편성이 필요한 상황이 발생합니다.

    골품제도는 족제적 왕경의 6부 조직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며 왕족을 대상으로 한 골제와 귀족을 대상으로 한 두품제가 각별도의 체제를 갖고, 후 성골과 진골이라는 계급으로 나위며 총 8개의 신분계급으로 나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