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은 빈체제 하에서 39개 국가 및 자유도시로 구성된 연방이었습니다.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이 주도했고, 바이에른·작센·하노버·뷔르템베르크 같은 왕국들과 프랑크푸르트·함부르크·브레멘·뤼베크 등 자유시가 포함되었습니다.
이에 독일은 민족주의의 영향을 통일 운동이 일어나 경제적으로 관세동맹을 체결하고, 이어 정치적 통일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특히 1848년 프랑크푸르트 국민회의를 열어 자유주의적 통일 논의가 있었으나 결렬되었습니다.
이후 프로이센의 비스마르크는 자유주의적 통일의 불가능을 인식하고, 철혈정책을 추진하였습니다. 그는 1862년 프로이센 재상이 된 그는 의회 반대를 무릅쓰고 군비를 확장했으며, 통일은 연설이나 다수결이 아니라 철과 피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슐레스비히, 홀스타인 문제를 구실로 1866년 오스트리아 전쟁에서 승리하여 북독일 연방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1870년에는 에스파냐 왕위 문제를 이용해 프랑스를 자극해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을 일으켰고, 승리하자 남부 독일 제후국들도 통일에 참여했습니다. 1871년 1월 18일 프로이센이 파리를 점령한 가운데 빌헬름 1세가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서 독일 황제로 추대되며 독일 제국이 선포되었습니다. 이로써 오스트리아를 제외한 독일계 국가들이 프로이센 중심으로 통일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