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로고
검색 이미지
역사 이미지
역사학문
역사 이미지
역사학문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6.11

고려나 조선시대에서도 과학수사라는 것을 하였나요?

요즘 시대에서도 과학수사를 하더라도 미재 사건이 종종 있습니다. 과거에는 훨씬 더 많았을 것 같은데요. 그래도 사람들이 우격다짐의 수사에 대해 문제점을 느껴 나름의 과학수사를 하였는지 궁금합니다.

55글자 더 채워주세요.
답변의 개수1개의 답변이 있어요!
  • 잘난몽구스218
    잘난몽구스21823.07.21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도 나름의 과학수사는 있었습니다.

    유교적 윤리의식으로 부검은 하지 않았으나, 시신의 상태나 주변 정황을 꼼꼼히 살폈으며 얼굴색을 진한 붉음, 검붉음, 누렇게 붉음, 시퍼렇게 붉음, 창백하게 붉음, 연하게 붉음으로 나누어 기록, 만약 목이 졸려 죽은 자라면 정맥만 막히므로 피가 머리쪽으로 몰려 얼굴색이 검붉게 되는데 설령 목을 매달아 자살한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타살임을 알수있었으니, 목을 매달았다면 정맥과 동맥이 모두 막혀 얼굴에 검붉은 울혈이 생기지 않은 것으로 파악했습니다.

    또한 색에 의존한 검시방법을 이용해 범인들이 살해 흔적을 위장했는데 흉기로 구타해 살해한 뒤 푸르거나 붉은 색의 상처를 지우기 위해 범인들은 꼭두서니 풀을 식초에 담갔다가 상처에 발라 상흔을 제거했습니다.

    이에 조선의 법의학서적에는 상흔이 의심스러우면 사또는 반드시 감초즙으로 해당 부위를 닦도록 하라, 진짜 상처가 있었다면 즉시 나타날 것이다. 라고 기록했습니다.

    독극물 검사로는 유황이나 비소 등은 은과 반응해 검은 막을 형성하는데 이 원리를 이용해 은비녀를 죽은 자의 구강과 식도에 밀어 넣은 뒤 색이 변하는지 관찰, 독살인지 아닌지를 밝히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