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나라에서 이순신 장궁님께 면사첩을 내렸다는데 어떤 의미인가요?
임진왜란 이후 명나라는 우리나라를 도와 일본 왜군들과 싸웠는데요.
근데 이상하게 다른나라인 명나라에서 이순신 장군님께 면사첩이라는 것을 내렸다는데, 면사첩이 무엇이고 이게 어떤 의미인 것인지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 면사첩은 이순신 장군에게 보내는 것이 아니라, 일본군에게 보내는 항복 권유문으로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이러한 면사첩은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와 조선이 왜군을 물리치기 위해 사용한 대표적인 전술 중 하나였습니다. 명나라와 조선은 면사첩을 통해 일본군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그들의 항복을 유도함으로써 전쟁을 유리하게 이끌고자 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면사첩이란 죽을죄를 용서하여 살려준다는 내용을 적은 문서를 말합니다. 1597년(선조 30) 이순신이 통제사 직에서 파직되어 옥에 갇힌 일이 있었습니다. 이때 명나라에서 파견된 양호와 유정이 조선의 대신들에게 공문을 보내면서 이순신에게도 함께 보냈는데 그 내용은 “통제사 이순신이 만약 군사를 거느리고 나온다면 특별히 황제의 명으로 죄를 용서하고 높은 벼슬을 내릴 것이요, 나와서 항복한다면 목숨만은 구할 것이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순신은 선조에게서 면사첩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순신의 난중일기에 보면 정유 11월 17일 양 경리의 차관이 초유문과 면사첩을 가지고 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충무공전서의 설명에 의하면 초유문은 적이나 또는 적에게 붙어던 자들을 너그러운 조건으로 포용하는데 관한 포고문이라 하고 면사첩은 사형을 적용하지 않을 것을 보증하는 증명서라 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두 가지는 적이나 부역자들에 관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 항복을 권유하는 문서입니다.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면사첩은 사형 면제 첩 입니다
전쟁중에 어쩔 수 없이 배신했던 사람한테 사형은 봐줄태니까 돌아오라고 주는 문서죠.
난중일기에
1597년 11월 17일(甲辰). 비. 비. 양경리가 보낸
군관이 초유문(招誘文)과 면사첩(免死帖)을 가지고
왔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만, 애초에 면사첩은 명나라에서만 쓰는 거라서
왜 이순신 장군님이 받았는지 알 수 없고
왜 줬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이게 진짜로 이순신 장군님 본인한테 보낸 것인지
아니면 일본 귀순자인 항왜나 배설같은 탈영경험 있는 군사에게
뿌리라고 준 것인지 뭔지, 딱 한줄 써있는게 다라서 해석의 여지도 없죠
참고로 초유문은 적과 적에게 잡힌 포로에게 "니들은 조금 봐줄께" 라고 알리는 포고문 입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면사첩은 왜적에 투항해서 그들에게 부역한 자들이나 일본군의 귀순을 장려하기 위한 것으로 단순 삐라 형식인 초유문과 같이 뿌려서 이를 소지한 자는 그 죄를 묻지 않고 죽이지 않겠다는 증명서입니다. 이순신 장군에게 보내는 것이 아니라 일본 왜군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항복 권유문에 해당 하는 것 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