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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난몽구스218
잘난몽구스21823.12.07

허수아비의 유래는 어떻게 되나요??

허수아비는 지금도 사용하는 것 중 하나인데 아주 우수꽝스럽기도 하고 귀엽기도 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요

이런 허수아비는 언제부터 사용되었고 당시에서 지금처럼의 목적으로 사용되었는지 알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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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5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이명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어느 마을에 ‘허수’라는 농사꾼이 살고 있었다. 그런데 힘들게 한 해 농사를 지어 논과 밭에 곡식과 작물들이 탐스럽게 익어가는 가을철이 되면 뿌듯한 기분을 망쳐놓는 게 있었다.

    땀의 결실에 매일같이 달려들어 까먹는 수천마리의 새떼들 모습이 그것이었다.

    한해의 결실을 지키기 위해 매일처럼 새떼와의 전쟁을 치르다보면 밥은커녕 뒷일 볼 짬을 내기도 힘든 형편이기 일쑤였다.

    그러던 하루는, 참새떼들을 쫓고 난 후 땀을 식히면서 뾰족한 수가 없을까 고민하던 중, 번뜩 꾀 한 가지가 솟아났다.

    바로 궁즉통(弓則通) !

    짚으로 정성스럽게 사람모양을 만든 후 제 아비의 등걸 적삼을 입히고 모자까지 씌웠다.

    이것을 논 한 가운데 세워놓으니 새떼가 깜작 속아 날아드는 게 뜸했다.

    그러니 밥도 제 때에 챙겨먹고 뒷일도 편히 볼 수 있었다.

    헌데 동네 사람들이 이것을 보게 되었다. 그들은 논 가운데 서있는 것의 옷과 모자만 보고

    ‘이보게 허수아비 나좀 봅세! 라고 멀을 골었다.

    그러나 대답이 없어 자세히 보니 진짜 사람이 아니었던 것. 그런데 그게 새떼들이 접근을 막는다는 사실을 알고 너도 나도 허수어비를 만들어 새워 놓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게 소문에 소문의 꼬리를 물고 퍼져나갔다. 드디어 그 입소문, 말없는 말(言)이 천리를 달려,

    즉 무족지마(無足之馬)(말) 주천리(走千里) 라~

    임금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이를 들은 임금님은 어명을 내렸다.

    ‘온 나라에서 새떼에게 빼앗기는 곡식이 수만 석 일터! 그 귀한 곡식을 지혜로써,

    굶주릴 백성들 배불이 먹게했으니 기특한 허수에게 백민 1백석으로 포상하고 허수아비를 전구에 장려하노라!‘

    그 이후 허수아비라 명명된 이것이 온 나라에 퍼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 안녕하세요. 박민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전해저오는 이야기로는 제구실을 못한 채 자리만 차지하는 사람을 일컫는 '허수 가 달린 아비'에서 허수아비가 유래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허수아비란 말은 허아비와 같은 말로서 '속이 빈 아비'란 뜻에서 나왔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한 전설에 의하면 허수아비는 사람의 이름 즉 허수라는 아이의 아버지라는 뜻이라고 전해지고 있기도 합니다.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12.07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어느 마을에 ‘허수’라는 농사꾼이 살고 있었고 힘들게 한 해 농사를 지어 논과 밭에 곡식과 작물들이 탐스럽게 익어가는 가을철이 되면 기분을 망쳐놓는 게 있었습니다. 땀의 결실에 매일같이 달려들어 까먹는 수천마리의 새떼들이었고 한해의 결실을 지키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하루는 참새떼들을 쫓고 난 후 땀을 식히면서 고민하던 중 바로 궁즉통이 떠올랐습니다. 짚으로 정성스럽게 사람모양을 만든 후 제 아비의 등걸 적삼을 입히고 모자까지 씌워 논 한 가운데 세워놓으니 새떼가 깜작 속아 날아드는 게 뜸했다고합니다. 동네 사람들이 이것을 보게 되었고 논 가운데 서있는 것의 옷과 모자만 보고 ‘이보게 허수아비 나좀 봅세! 라고 말을했더니 대답이 없어 자세히 보니 진짜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었고 그것이 새떼들이 접근을 막는다는 사실을 알고 너도 나도 허수어비를 만들어 새워 놓기 시작했다고합니다. 그러자 소문이 퍼져 임금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는데 임금님은 ‘온 나라에서 새떼에게 빼앗기는 곡식이 수만 석 일터! 그 귀한 곡식을 지혜로써,굶주릴 백성들 배불이 먹게했으니 기특한 허수에게 백민 1백석으로 포상하고 허수아비를 전구에 장려하노라!‘ 하고 어명을 내렸다고합니다. 그 이후 허수아비라 명명된 이것이 온 나라에 퍼지게 되었다고합니다.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농경 5천년 문화 역사 농경 사회의 허수아비의 유래는 옛날에 지극한 효자 부부가 비 가림막으로 만든 볏짚을 벗어서 지게에 걸어 놓은 것이 허수아비의 시초입니다. 옛날에 효자부부가 어렵게 농사를 지으며 살았으나 날짐승들이 곡식을 따먹어 수확량이 줄어들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부모님 병수발에 약초를 캐러 갔다오면 새들이 곡식을 다 따먹어 속이 많이 상했습니다. 새들이 따 먹은 만큼 저녁을 굶기로 하고 몇날 몇일을 허기진 배를 물로 채우며 식량을 아껴서 부모님 병환을 고치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어느날 용한 의원 집에 약을 지으러 가는데 비가 장대같이 쏟아지자 볏집으로 엮어서 입고 집에 와서 지게에 걸어놓고 산에 갔다 왔는데 멍석에 널어 논 곡식이 그대로 있었습니다. 텃밭과 논에도 새들이 없고 멀리서 지저귀고만 있었습니다. 지게에 걸어둔 볏짚을 사람으로 착각해 새들이 접근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 후부터 허수아비를 논밭에 세워놓는 풍습이 생겼습니다. 허수하다의 옛말이 허소하다인데 얼마쯤 비어서 허전하다는 뜻입니다. 이에 허소가 변한 허수에 아비가 붙여진 이름이 허수아비입니다.


  • 안녕하세요. 양미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허수아비와 같은 경우에는 신라시대 서라벌에서

    효자였던 아들의 죽음에 대하여 아버지가 몸이 굳은 채로 논 한가운데에서

    팔을 벌리고 선채로 죽음을 맞이한 이야기에서 유래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