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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탈한하늘소43
소탈한하늘소4323.05.01

금난전권이라는 말은 무슨의미인것인가요?

조선후기역사에서 금난전권이라는 말이 나오는것 같던데요, 아마도 조선시대 상업과 관련된 말같은데요, 근데 금난전권이라는 말은 무슨의미인것인가요? 혹시 독점판매권이라는 의미인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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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5.02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후기 육의전(六矣廛)이나 시전상인(市廛商人)이 난전(亂廛)을 금지시킬 수 있었던 권리를 말합니다.

    일종의 도고권(都賈權)이다.

    국역(國役)을 부담하는 육의전을 비롯한 시전이 서울 도성 안과 성저십리(城底十里 : 도성 아래 10리까지) 이내의 지역에서 난전의 활동을 규제하고, 특정 상품에 대한 전매 특권을 지킬 수 있도록 조정으로부터 부여받았던 상업상의 특권을 말한다.

    조선 조정에서는 관청의 수요에 충당하고 사행(使行)의 세공(歲貢)에 필요한 물품을 조달하기 위해 상인들에게 국역을 부담시킬 필요가 있었다. 동시에 상인들은 정부 권력의 비호 아래 상권의 확보를 도모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이들 양자 사이에 일종의 대상 관계(代償關係)가 성립되었다.

    그리하여 조정에서는 육의전을 비롯한 시전에 국역을 부담시키는 대신, 자금의 대차권, 외부 압력으로부터의 자신들의 이익 보호, 난전의 설치 금지권 등을 부여하였다. 특히, 서울 및 성저십리 지역 안에서 난전의 설치를 규제하는 금난전권은 대표적인 특권이었다.

    원래 난전이란 전안(廛案 : 숙종 32년부터 실시된 제도로, 시전에서 취급하는 물종과 상인의 주소·성명을 등록한 公簿)에 등록되지 않은 상인들의 상행위 및 자기 소관 이외의 상품을 도내(都內)에서 판매하는 행위를 말한다.

    따라서 봉건적인 어용상단(御用商團)으로서의 특권이 없는 자가 상행위에 종사해 봉건적 상업 질서를 문란하게 함을 뜻하는 것이다. 때문에 그들의 출현은 구조적으로 봉건적 상업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그 결과, 상인 상호간의 경쟁이 심해졌고 특권 상인들은 자구책으로 그들의 권리를 강화하려고 하였다. 이에 정부는 특권 상인들을 보호하고 그들로부터 국역 부담을 확보하기 위한 정책으로, 육의전을 비롯한 시전에 난전을 규제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했던 것이다.

    금난전권이 출현한 시기는 17세기 초엽으로 추정된다. 이를 통해 시전상인들은 길드(Guild)와 비슷한 특권을 보유하였다.

    또 한편으로는 궁실 및 관부와 결탁해 신흥 상공업자들의 시장 진출을 억제하였다. 때문에 건전한 상공업 발전이 저해되었고, 도시 소비자나 영세 상인 및 소규모 생산자층의 피해가 증가되어갔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권세가의 호노(豪奴), 각 영문 소속의 군병, 일부 수공업자 및 사상도고(私商都賈)들의 세력은 신장되어, 마침내 일부 특권 상인들의 금난전권을 혁파하고자 하는 여론이 높아졌다.

    그리하여 조정에서는 1791년(정조 15) 2월 신해통공(辛亥通共 : 정조 15년에 각 시전을 존속시키면서 도매 상업에 대해 공식적으로 금난전권을 금지시킨 조처. 즉, 육의전 이외의 시전에게 도고권을 허용하지 않은 조처)으로 육의전을 제외한 일반 시전이 소유하고 있던 금난전권을 혁파하였다. 이로써 전폐(廛弊)가 바로잡아졌으며, 봉건적 특권상업 체제는 서서히 변모하기 시작했다.

    신해통공 이후 금난전권을 박탈당한 일반 시전상인들은 이를 되찾기 위해 노력했으나, 실현되지 못하였다. 금난전권의 출현과 혁파는 도시 상업의 발전 과정에서 나타난 현상으로 조선 후기 상업 활동의 전개 과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사례로 평가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금난전권 [禁亂廛權]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금난전권은 조정이 모든 상인들에게 일일히 징세를 하기 어려워 한양 내 시전 상인들에게 독점 판매권을 주고 그 대신 시전 상인들로부터 안정적으로 세수를 충당하기 위해 시전 상인들에게 허가받지 않은 난전을 단속하도록 준 권한입니다.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금난전권(禁亂廛權)은 육의전을 비롯한 한성 내의 37개 시전들이 도성 안팎 10리(약 4km) 이내에서 난전을 금지시킬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출처:위키백과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금난전권은 서울에서 정해진 시전 상인 외에는 상업 활동을 금지하는 법입니다. 서울의 외연이 점차 확대되어 가면서 시전 상인 외에 상업 활동을 하는 상인들이 생겨났습니다. 따라서 독점적으로 관청이나 궁궐에 필요한 물품을 납품하는 시전 상인들은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들은 외국 사신이 방문할 경우 접대 물품을 공급하고 각종 잡역이나 국장에 관련된 요역도 담당하였으므로 이러한 부담을 지지 않는 난전 상인들의 활동하면서 이익에 더욱 많은 침해를 받게 되었습니다.


    난전의 활동을 금지시킨 것은 현종 8개 조항의 형조 금제조와 6개 조항의 한성부 금제조에 최초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또한 정조 ‘금난전법’이 불과 100여 년 내외의 일이라고 언급한 사실을 통해 시전이 난전을 전면적으로 처벌할 수 있었던 시기를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금난전권은 난전 상인들이 파는 물건에 대해 속공할 수 있는 권한과 착납하는 권한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이는 시전 상인들이 난전들의 물건을 직접 압수하거나 난전 상인을 구금할 수 있는 권한이었습니다. 이러한 금난전권은 18세기 초반에 대부분의 시전으로 확대되었습니다. 물론 이 권한이 모든 시전에 일률적으로 주어진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모든 시전 상인들이 난전을 단속할 수 있는 금난전권을 부여받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금난전권의 확대는 난전 상인들의 활동을 위축시켜 규모가 커진 도성의 상업이 원활하게 유지되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이후 금난전권은 정조 신해통공으로 폐지될 때까지 유지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축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말그대로 난전을 금하는 권리입니다. 그러니까 아무나 장사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나라에 허가를 받은 사람만이 장사를 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이지요. 그들은 그렇게 상권을

    독점하였고 엄청난 폭리를 취하고 조정에는 막대한 뇌물을 바쳐가며 그들의 권리를 지켰습니다.

    하지만 조선후기에 오면서 이러한 부분들은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고 점차 벽이 허물어 지게되고

    정조가 이를 혁파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