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로고
검색 이미지
역사 이미지
역사학문
역사 이미지
역사학문
비둘기
비둘기23.02.06

전두환대통령시절 있었던 장영자어음사기사건이 정확히 어떤 사건인가요?

그 당시에 이 사건이 상당히 사회적으로 큰 이슈였다고 들었습니다. 이 사건에 당시 영부인도 연관이 있었다고 들은듯한데 정확히 어떤사건이었는지 설명부탁드려봅니다.

55글자 더 채워주세요.
답변의 개수3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정광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장영자 어음 사기 사건의 배경은 장영자는 국회의원과 국가 안전 기획부 차장을 지낸 이철희를 내세워 미모와 언변으로 고위층과 긴밀한 관계를 과시한후에 자금난을 겪고 있는 기업들에 자금지원 대가로 2배에서 최고 9배까지 어음을 받아서 이를 사채시장에 유통시키고 돈을 가로챘습니다. 이렇게 어음과 담보조로 받은 견질 어음을 몽땅 시중에서 할인 한 후 다시 굴리는 수법으로 6400 억원의 어음을 시중에 유통시켜 1400 억원을 사기로 취하게 되었던 사건이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82년 5월 4일 , 이철희, 장영자 부부가 일으킨 대규모 어음 사기사건입니다.

    1982년 5월 4일 당시 사채시장의 큰손으로 불리던 장영자와 그의 남편 이철희가 어음사기 혐의로 검찰에 구속되면서 일어난 대규모 어음사기 사건은 건국 후 최대 규모의 금융 사기사건이자 권력형 금융비리의 대표적인 사례로 손꼽힙니다.

    제5공화국의 출범과 함께 정치권력을 등에 업은 장영자는 1981년 2월부터 1982년 4월까지 자기자본 비율이 약한 건설업체에 유리한 조건으로 자금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대여액의 2배, 최고 9배에 달하는 어음을 받아 사채시장에서 할인하는 수법으로 총 7,111억원의 어음을 유통시켰고 이 가운데 어음사기 행각을 벌인 액만 6,404억원입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장여인광풍이 몰아쳤는데 정계, 경제계는 물론 사회 각 분야에 엄청난 파문이 일었고 경제계에 불어닥친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금융혁명으로 일컬어지는 6.28조치가 단행되고 한국에서 처음으로 금융실명제 논의가 본격화 됩니다.

    여당인 민주정의당의 사무총장이 물러나고 법무부장관이 2번이나 교체되고, 이 사건과 관련해 31명의 피고인이 법정에 올랐으나, 그 중 11명만 구속되어 실형을 받았으며 장영자, 이철희 부부는 15년 징역형의 선고를 받고 복역중 이철희가 먼저 가석방 된 뒤 , 장영자는 복역 10년만에 가석방으로 풀려납니다.

    그러나 장영자는 1994년 다시 100억원대의 어음 사기사건으로 구속되어 복역하고 2001년 5ㅝㄹ에도 220억원대의 구권화폐 사기 행각을 벌인 혐의로 구속되어 세번째 복역을 합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철희 장영자 어음 사기 사건은 1982년 5월 4일, 사채시장의 '큰손'으로 불리던 장영자와 남편 이철희가 어음사기 혐의로 검찰에 구속되면서 일어난 대규모 어음 사기사건입니다.장영자는 국회의원과 국가 안전기획부 차장을 지낸 이철희를 내세워 미모와 화려한 언변으로 고위층과 긴밀한 관계를 과시한 후 자금난을 겪고 있는 기업들에 자금 지원 대가로 2배에서 최고 9배 짜리 어음을 받아 이를 사채 시장에 유통 시키고 돈을 착복했다고 합니다.어음과 담보조로 받은 견질어음을 몽땅 시중에서 할인한 후 다시 굴리는 수법으로 6400억 원의 어음을 시중에 유통시켜 1400여 억 원을 사기로 취했다고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