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르타식교육의 시초는 어디인가요?
요즘 흔히 아주 빡시게 교육이나 훈련을 스파르타식 교육이라고 부른다고 하더군요. 근데 스파르타식교육이라는 거는 무엇이고 어떤것이었나요?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대 스파르타 특유의 군인 양성방법 스파르타식 교육으로 유명하여, 동시대 그리스인들도 스파르타의 특유의 가혹한 사회 시스템에 기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스파르타인들의 절제있는 생활을 존경했습니다. 현대에도 혹독하고 자비심 없는 비인간적인 단련 과정을 이야기할 때 흔히 인용하곤 합니다.스파르타 역사의 성립은 다음과 같습니다.
미케네 문명 시기에는 펠로폰네소스에서 아카이아인의 도시로 강력했습니다. 우리가 아는 트로이 전쟁에 나오는 메넬라오스와 헬레네가 스파르타 출신으로, 그리스군의 맹주였던 미케네와 더불어서 주요한 역할을 하는 국가로 나옵니다. 하지만 도리아인의 남하와 바다민족의 침략 등으로 미케네 문명이 멸망하면서 여타 그리스의 도시들과 같이 쇠퇴하여 암흑시대로 접어들었고 중심 세력이 아카이아인에서 도리아인으로 교체됩니다.
다만 완벽히 폐허로 전락한 미케네와 달리, 스파르타는 이전의 전통과 문화를 꽤 보존할 수 있었는데, 특유의 집단 전사 문화와 자유로운 여성 문화가 미케네 문명 시대의 그리스 전사문화의 흔적입니다. 암흑시대 당시에 스파르타 지역에는 정착촌 4곳이 있었는데 그중 2곳이 동맹을 맺어 다른 2곳을 멸망시키면서 탄생한 것이 일반적으로 알려진 스파르타의 기원으로, 스파르타 특유의 이중왕(Dual King) 제도도 이 동맹에서 기인했다고 여겨집니다.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스파르타는 다른 그리이스의 폴리스들과는 달리 평야 지대에 위치 해있기에 외세와의 충돌이 잦았기에 군사적으로 강력한 상태를 항상 유지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엄격하고 통제된 군국주의적 교육을 통하여 근면과 상무의 정신 ․생활태도 기풍 등을 기르고자 했는데 심지어 어린 아기아 태어 났을 때 언덕에서 굴려 살아남은 아이만을 키웠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가혹한 훈련을 시켰다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스파르타식 교육은 스파르타의 교육제도를 뜻하며 아고게 라고 부릅니다.
이는 태어날때부터 시작되며 아이가 태어나면 다섯명의 검사관들이 레세에서 꼼꼼한 검사를 거치는데 여성의 경우 강인한 전사를 낳는 근원이므로 귀중하게 생각되며, 남자아이는 골격에 이상이 있거나 기형, 혹은 지나치게 작게 태어났는지 따지고 생식기 부위가 이상이 없는지 하체부분이 빈약하지 않은지 확인하고 만약 하나라도 하자가 있으면 바로 절벽에서 떨어뜨려 죽였습니다.
7살 까지 집에서 아버지에게 기본적인 전투상식과 소양, 철학, 예절을 배운 뒤 7살이면 전사가 되기 위해 아고게를 시작합니다.
집을 떠나 합숙을 하며 아이들의 침대는 풀을 뜯어 모아 만들어야 했고 겨울에도 이불을 주지 않고 풀 안에 가시를 섞어 놓기도 했으며, 비위생적이고 가혹한 환경으로 부상과 질병에 수시로 노출되었습니다.
일주일간의 합숙생활이 적응되면 스파르타식 훈련이라 불리는 훈련에 돌입, 하루 24시간 중 거의 10시간을 군사훈련으로 보내고 기초체력 훈련, 창술, 방패술, 바진, 검술, 박투, 레슬링 등을 배웠으며 하루 평균 7시간의 수면, 1시간의 식사시간이 있었습니다.
하루 2시간씩 총 6시간동안 수학, 문학, 철학을 배웠으며, 맞으면 맞을수록 피부가 단단해진다고 생각해 15세 이전에 일년에 한번씩 훈련생들을 나무 형틀에 묶어놓고 회초리나 채찍으로 때리거나, 뜨거운 물을 부어 피부를 연하게 한 후 자갈밭에 굴리는데 피멍이 든 곳이 약해 터지면 차가운 물에 재빨리 몸을 담가 식히는 방법으로 전신의 피부를 단단하게 단련시켰습니다.
12세가 되면 자신이 입던 셔츠를 반납하고 망토를 걸치는데 이것이 스파르타의 군복역할로, 12세가 된다는 것은 전사로 취급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16세가 되면 저녁은 부대에서 먹고 나머지 두끼는 알아서 해결, 마을로 내려가 음식을 훔쳐먹는 것으로 상대가 노예 계급인 헤일로타이라면 살인도 마다하지 않고 오히려 권장했으며, 시민들에게도 훔치도록 교육했습니다.
20살이 넘으면 전사로 인정받기 위해 또 다시 목숨을 거는 훈련과 선발과정을 거치는데 스파르타의 노예계층 마을, 메세니아 지방을 습격해 노예로 삼은 헤일로타이들을 죽이는 것, 최후의 통과의례로 혼자 산에 창을 들고가 야생동물을 잡아와야 했습니다.
현재의 의미에서는 혹독한 교육방식을 통틀어 의미합니다.
안녕하세요. 경제·금융전문가 조유성 AFPK 입니다.
✅️ 빡세게, 강인하게 훈련 시키고 교육 시키는 게 스파르타식 교육인데, 과거 고대국가였던 스파르타에서 시행되었던 강력한 군사교육이 그 시초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결과 스파르타는 고대 민주정의 효시 국가인 아테네와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아고게 또는 스파르타 교육은 고대 스파르타에서 행해진 극히 엄격한 스파르타의 모든 남성 시민(에우리폰티드 왕가와 아기아드 왕가의 장손은 예외)을 위한 국가 주도의 교육을 이르는 말이다. 교육 목적은 애국심과 강한 체력을 갖추고 국가에 봉사하는 인간을 키우는 데 있었으며, 국가가 교육을 철저히 통제했다. 교육 내용에는 은신, 스파르타에 대한 충성심 고취, 극기훈련을 포함한 군사훈련, 사냥, 춤, 노래, 사교 소통 준비 등이다. ‘아고게’(agoge)라는 단어는 고대 그리스어로 ‘양육’을 뜻했지만, 문맥상 일반적으로 ‘지도’(leading), ‘선도’(guidance), ‘훈련’(training)을 의미했다. 민간 전설에 따르면, 아고게는 신화적인 입법가 리쿠르고스에 의해 도입되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그 기원은 국가가 7세에서 21세에 이르는 남성 시민들을 훈련시킨 기원전 7세기에서 6세기 사이일 것이라고 추측된다.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신체검사를 해서 허약한 아이는 산 속에 내다버리고, 건강한 아이만 키웠다. 따라서 오늘날 스파르타식 교육이라 하면 강압적인 교육을 뜻한다.
안녕하세요. 박정욱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스파르타식 교육(Spartan education)은 고대 그리스의 스파르타 시대에 존재했던 교육 체계를 가리킵니다. 스파르타는 고대 그리스에서 독특한 사회와 군사 체계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에 따른 교육 체계도 특이한 특징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스파르타식 교육의 주요 특징과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군사 중심 교육: 스파르타식 교육은 주로 군사 훈련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스파르타 시민들은 전사로서의 역할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이를 위해 꾸준한 군사 훈련을 받았습니다. 어린 나이부터 군사 훈련을 시작하며, 신체적인 강화와 군사 전략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졌습니다.
물질적인 편애 배제: 스파르타에서는 부를 중시하지 않았으며, 시민들 간의 물질적인 편애를 배제하려 했습니다. 이를 위해 공동생활이 강조되었고, 개인의 물질적 소유권을 제한하는 제도가 시행되었습니다.
노동과 군사 훈련: 스파르타 시민들은 군사 훈련뿐만 아니라 농업과 일상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스스로 생산하는 노동을 수행하였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스파르타 시민들은 근면하고 자기자립적인 가치를 배웁니다.
절제와 강제적 규율: 음식, 술, 화장, 패션 등 다양한 면에서 스파르타 시민들은 절제하고 강제적인 규율에 따라야 했습니다. 이는 본질적인 훈련의 일부로서 특히 군사적 역량과 강한 의지를 형성하는 데 중요했습니다.
성교육: 스파르타에서는 남녀 모두 군사 교육을 받았으며, 성별에 상관없이 훈련을 통해 신체적으로 강화되었습니다.
스파르타식 교육은 군사적으로 강한 시민을 양성하는 데는 효과적이었지만, 개인의 자유와 창의성을 억누르는 면에서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또한, 이러한 엄격한 교육 체계가 시간이 지나면서 스파르타의 인구를 감소시키고 다른 도시국가와의 경쟁에서 밀려나는 요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스파르타에서 행해진 교육이 엄격한 국가적 ·군사적 의무교육이었다는 것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다.
고대 그리스는 약 20개의 폴리스로 구성되었는데, 그 중 스파르타에 수도를 둔 도리아족의 라케다이몬이 최고의 국가적 교육을 발달시킨 나라이다. BC 9세기 중엽 리쿠르고스가 정한 헌법이 교육의 기초를 이루었다.
스파르타의 국민은 귀족 ·평민 ·노예의 3계급으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이 법은 오직 정복계급으로서의 귀족교육에만 치중했던 비민주적인 것이었다. 스파르타인의 모든 교육은 국가적 통제하에 행해졌으며, 심지어는 출생에서 사망에 이르기까지 국가의 구속 아래 있었다. 만약 신생아가 허약하면 들판에 버려서 죽게 했으며, 건강한 아이만 부모에게 맡겨 7세까지 양육하도록 하였다. 남아가 7세에 이르면 가정을 떠나 국가가 운영하는 공공교육장에 들어가 감독관에 의해 엄격한 훈련을 받았다. 교육의 이상은 고통과 결핍을 견디는, 용맹 ·인내 ·애국 ·복종과 강한 체력을 갖춘 군인을 양성하는 데 있었다.
달리기 ·뜀뛰기 ·검술 ·씨름 ·승마 ·투창 ·수영 ·수렵 등도 다만 전장(戰場)에서의 싸움을 승리로 이끄는 강한 체력을 연마하는 목적으로 가르쳤다. 무용도 자기를 방어하고 적을 공격하는 전투무용이 행해졌으며, 음악 역시 용기를 고무하고 애국의 정조(情操)를 높이기 위해서만 교수되었다. 독(讀) ·서(書) ·산(算)과 같은 교육은 일상 생활에 필요한 기초적인 것만을 가르쳤다.
교육방법은 맹렬한 훈련과 경쟁 및 처벌을 위주로 하였다. 18∼20세까지의 소년은 군사훈련과 함께 연소아동을 지도하게 했으며, 21∼30세까지는 특별 병영생활을 시켰다. 여자교육도 남자와 같이 엄격하게 실시하였는데, 특히 건강한 아들의 출산과 양육을 천직으로 삼게 하고, 남편이 전장에 나가도 뒷일을 걱정하지 않게 하는 부인이 될 것을 강조하였다.
출처 : 두산백과
안녕하세요. 이태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스파르타식 교육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인 스파르타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스파르타는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페르시아 전쟁과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승리한 그리스의 대표적인 도시국가였으며 강력한 군사력 유지를 위해 국가가 교육을 장악하고, 모든 시민에게 의무적으로 군사 교육을 실시했습니다.
스파르타식 교육의 목적은 강인한 신체와 뛰어난 전투 능력을 갖춘 시민을 양성하는 데 있었습니다. 따라서 스파르타식 교육은 체육과 군사 교육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스파르타의 어린이들은 7세부터 18세까지 에페보이(Epheboi)라는 조직에 소속되어 군사 훈련을 받았습니다. 이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도 높은 체력 훈련과 무술 훈련을 받았습니다. 또한, 스파르타의 아이들은 가정에서 부모로부터 엄격한 교육을 받았습니다. 부모는 아이들이 강인하고 용감한 사람이 되도록 훈육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