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묘역은 단순히 죽은 자를 묻는 장소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풍수지리에 따라 조상의 영혼이 후손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고 믿었기 때문에 묘역의 위치 선정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또한 묘역은 신분을 나타내는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양반은 자신들의 신분을 과시하기 위해 화려하고 웅장한 묘역을 조성했습니다 이러한 묘역을 둘러싼 중요성 때문에 조선시대에는 다양한 갈등이 발생했습니다.
이러한 묘지와 관련된 소송을 산송이라고 하며 산송은 조선 중기 이후 차츰 나타나기 시작하여 18세기부터 19세기 사이에는 매우 빈번하게 일어났습니다. 파평 윤씨와 청송 심씨 사이에서 윤관 장군 묘역을 두고 400년 가까이 이어진 산송은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산송이니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