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조선의 환곡은 왜 구휼제도에서 세금처럼 변했나요?

원래는 봄에 곡식을 빌려주고 가을에 갚게 하는 제도였다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이자 격인 모곡이 관청 운영비로 쓰이면서 성격이 바뀌었다고 하더군요. 어느 시기부터 사실상 조세로 굳어졌고 지방 재정에서 비중이 얼마나 됐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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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환곡은 분래 춘궁기 곡식을 빌려주고 추수기에 갚게하는 구휼제도였습니다. 그러나 세종때부터 창고 손실 보전을 위해 10%의 이자를 받기 시작했고, 16세기 중엽 명종 때 일분모회록이 시행되면서 모곡의 일부가 국가 세입으로 편입되었습니다. 이후 17~18세기 재정난이 심해지자 모곡 비율이 30%으로 오르고, 중앙과 지방 관청이 환곡 이자로 경비를 충당하게 되면서 조세화 한 것입니다. 특히 대동법, 균역법 시행 이후 지방 재정이 악화되어 관아는 환곡 이자와 추가 징수로 운영비를 메우는 구조가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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