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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왕후는 왜 사후에 평가가 좋지 못했나요?

문정왕후 윤씨는 당시의 사림들과 어떤 대립점이 있었나요?

어떤 정치를 했길래 실록에 '사직의 죄인', '암탉이 새벽에 우는 것은 집안의 다함이다'라는 표현까지 인용해가면서까지 깎아내리는 표현을 썼을까요?

1개의 답변이 있어요!
  • 문정왕후는 중종의 세번째 왕비로 경원대원을 낳고, 인종 사후 명종으로 즉위하면서 수렴청정을 통해 권력을 장악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정왕후는 어머니를 잃은 세자를 약육하고 보호해야 하는 처지지만 자신의 소생인 경원대군을 낳은 후 세자가 아닌 경원대군에게 왕위를 계승시키고자 고심하게 되었고 이런한 야망을 이루기 위해 동생인 윤원로, 윤원형을 위하여 친인척을 동원 세자의 입지를 약화시켰습니다. 결국 인종 서거 이후 1545년 12세의 어린 나이로 명종이 즉위하자 을사사화를 일으켜 수많은 대윤 일파를 제거합니다.

    그러나 문저왕후가 죽자 실록사평에서 '사직의 죄인'이자 '집안을 망하게 한 암탉'이란 평가를 받게 됩니다. 이처럼 문정왕후는 중종대 중·후반부터 명종대에 이르기까지 계속된 척신정치의 중심부에 자리하면서 권력을 좌지우지하였고 을사사화나 정미사화와 같은 사화를 일으켜 수많은 사림세력들을 제거하였으며 국가이념인 성리학이념과 배치되는 숭불정책을 추진하였기 때문입니다. 곧 문정왕후는 중종~명종대 척신정치를 상징하는 존재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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