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에 있는 통곡의 벽 역사에 대해서 알려주세요.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에 있는 통곡의 벽은 유대교를 대표하는 유물이자 성지라고 하는데요.
무엇 때문에 통곡의 벽이 유대인들의 성지가 된 건지 궁금합니다.
통곡의 벽에 얽힌 역사에 대해서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박일권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통곡의 벽은 예루살렘의 성전산과 유대인 구역 사이에 위치한 옛 예루살렘 성전의 일부이자 유대인의 성지입니다. 과거 요르단령에 속했지만, 3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점령하였습니다. 그 너머로 보이는 황금빛 바위의 돔은 무함마드가 승천했다고 전하는 곳입니다.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통곡의 벽’은 BC 20년 경 헤롯 왕에 의해 지어진 성전 벽의 일부분이다. AD 70년 로마의 티투스 장군이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성전을 파괴할 때 로마군의 위대함을 후대에 보여주기 위해 성전의 서쪽 벽을 남겼는데, 그것이 바로 ‘통곡의 벽’이다. 지금 남아 있는 성전 벽은 60미터 가량이다.
로마 시대를 지나 비잔틴 시대에 들어와서, 로마 시대와 달리 전 세계에 흩어져서 사는 유대인들에게 1년에 한 번 예루살렘에 올라와 이 벽 앞에서 기도할 수 있게 특별히 허락되었다. 당시 유대인 순례객들은 이 벽을 붙잡고 가나안 땅과 가족과 성전을 잃은 것에 대해 옛 성전 방향을 향해 통곡하면서 기도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 벽의 이름이 ‘통곡의 벽’이라고 붙여진 것이다.
이스라엘이 독립할 때 성전 벽이 있는 지역은 요르단에 속해 있었으나, 1967년 ‘6일 전쟁’ 때 이스라엘이 되찾았고, 비로소 지금과 같이 유대인들에게 최고의 성지가 되었다. ‘통곡의 벽’ 너머에는 황금으로 입혀진 돔으로 유명한 모슬렘 사원 ‘황금 사원(바위 사원)’이 세워져 있다. 사원 안에는 크고 납작한 바위가 하나 있는데,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고 했던 모리아 산의 제단 자리이다. 또한, 솔로몬 왕이 성전을 지을 때 중심으로 삼은 곳이다(대하 3:1~2). 지금도 사원 밑에는 솔로몬 성전 터의 기초와 헤롯 성전 터의 기초가 묻혀 있다고 한다.
안녕하세요. 천지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통곡의 벽 > 서쪽벽 이라고 불립니다.
1928년 일부 유대 교도가 지금까지의 관례를 깨고 멋대로 벤치나 막을 가져왔기 때문에 29년에는 유대인가 팔레스타인과 아랍의 분쟁이 되어 다수의 사상자를 내고 성지문제를 둘러싼 아랍과 유대의 분쟁의 발화점이 되었습니다.
통곡의 벽 유래>
첫째, 예수가 죽은 뒤 로마인이 예루살렘을 공격하여 많은 유대인이 죽었는데 이 같은 비극을 지켜 본 성벽이 밤이 되면 통탄의 눈물을 흘렀다는 설
둘째, 유대인들이 성벽 앞에 모여 성전이 파괴된 것을 슬퍼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 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이태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통곡의 벽(Wailing Wall)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교와 이슬람교의 성지로 구 예루살렘 시가지의 동편에 있으며, 돌로 이루어진 고대 이스라엘의 신전의 서쪽 벽의 일부로, 유대인들은 신전의 상실을 슬퍼하고 재건하는 것을 바라고 있습니다. 이슬람교도들도 이곳을 역시 바위의 돔 모스크 다음가는 성지로 여기고 있습니다.
통곡의 벽 Wailing Wall은 제2 성전 건축과 관련하여 기원전 19년경 헤로디아스 대왕에 의해 세워진 것입니다. 이것은 성소 산에 대한 지탱벽 역할을 하였으며, 이후 유대인들이 기도를 드릴 수 있는 가장 신성한 장소로 되었습니다.
기원전 70년에 로마 제국이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제2 성전을 파괴한 후, 제2 성전은 없어지고 유대인들은 유방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통곡의 벽은 그들이 예루살렘과 성지에 대한 연결을 유지하며 기도하고 슬픔을 표현하는 곳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통곡의 벽의 유래는 나라를 잃은 유대인들이 그나마 남은 성전의 서쪽 축대 밖에 모여 통곡하였기에 '통곡의 벽'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예루살렘이 함락될 당시 벽이 진짜로 눈물을 흘렸다는 전설에서 따온 이름이란 설도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건국함으로써 그네들의 오랜 숙원은 풀렸지만 아직 예루살렘 성전은 복구되지 못하였기에, 아직도 많은 유대인들이 이곳을 찾아 기도를 올린다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로마 제국이 이스라엘을 통치하면서 지나치게 세금을 매기고 유대교에 간섭하고 칼리굴라가 폭정을 휘두른 영향으로 서기 66년부터 73년까지 1차 유대전쟁이 벌어졌고 73년 티투스 장군은 예루살렘을 함락하고 유대인들의 정신적 구심점인 헤로데 성전을 헐어버렸습니다.
로마 군대는 예루살렘 성전의 모든 건물을 헐었지만 성전의 축대이기도 한 이방인의 뜰 부분의 서쪽 담장은 헐지 못했고 이런 이유로 헤로데 성전 건물의 서쪽 축대 일부만 무너지지 않고 남아있는 것이 통곡의 벽입니다.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속에서 예루살렘이 멸망당하면서 예루살렘의 벽만이 남아있는데 슬픈역사가 담겨서 통곡의 벽이라 부르는 걸로아는데 아직까지 그곳에서 기도하고 우는 이유는 메시야를 기다리고, 또 소망을 염원하며 기도하는 것으로알고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