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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친칠라280
대단한친칠라28022.12.25

삼국시대에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역사교과서를 보면 고구려는 중국의 왕조국가들과 비견될 정도의 영토를 가지고 있었고 실제 수나라나 당나라와 전쟁에서 승리할 정도의 강대국이었던 것 같은데, 왜 한반도 남부의 일부를 차지했던 백제나 신라를 통일하지 못했을 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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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삼국 중 가장 강한 나라는 고구려였으나 당시 오랜 기간 당과의 전쟁과 백제, 신라의 견제 등으로 쇠약해진 상황이었습니다.

    신라는 백제가 대야성을 공격하여 빼앗고 당시 김춘추의 사위와 딸이 죽게 되어 이를 복수하고자 고구려에 도움은 청하였으나 도움을 얻지 못하고 신라로 돌아가 복수를 계획하게 됩니다.

    고구려에서는 핵심 전력이자 권력가인 연개소문이 사망하자 그의 세 아들이 권력을 차지하고자 욕심을 부려 각자 그를 따르는 세력들로 내분이 일어났고, 그 중 장자인 연남생은 당으로 망명하여 역으로 고구려를 탐하게 됩니다.

    같은 시기에 신라는 당에 고구려 백제를 함께 치자는 취지로 전쟁을 벌이고 있었고 당은 신라를 돕는 것이 아니라 고구려를 치고 한반도를 차지하고자 하는 야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계백이 선봉이었던 백제가 패하고 결국 멸망하게 되어 아래에서는 신라가 위에서는 당이 공격하였고, 고구려는 군부핵심세력이었던 연개소문도 없고, 권력싸움으로 내분도 있는 상황으로 외세의 침략을 막지 못하고 멸망하게 됩니다.

    고구려가 가장 융성했던 시기에 충분히 삼국통일을 할 수 있었으나 백제는 형제국가라 인정하고 머리를 조아리면 복속하지는 않았으며, 신라는 당시 가장 약소국으로 고구려에 도움은 요청하던 시기였으므로 자신들의 영향력에 있다고 생각했지 지배하지 않았습니다. 삼한의 한민족이니 힘을 합쳐 북진해야 한다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인정이 주변국이 힘을 키우게 된 패착이었습니다.


    고구려 멸망 이후 고구려 장수 중 대중상과 그 아들인 대조영이 옛고구려 영토에 후고구려라 칭하며 대중상을 황제로 세우고 건국을 하고 완전히 자리를 잡은 대조영이 황제로 오른 뒤에는 국호를 진으로 바꾸고 대진국이라 불렀으며 연호를 따로 썼습니다.

    당에서는 그 위세를 무시할 수는 없었으나 동등한 국가로는 인정할 수 없다 하여 낮추어 중국 발해군 지역을 근거로 하는 발해국왕이라 하사하였다 합니다.

    당시 당이 가장 강력한 시기라 주변국도 발해라 불렀고, 당의 속국처럼 여겼었지만, 지금 밝혀지는 자료로만 봐도 독자적민 연호를 쓰고 유물에 황후라는 명칭을 쓴 것으로 보아 당과 대등한 국가였음이 분명하다 볼 수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박일권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그것은 고구려가 내부 권력 다툼으로 하나가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연개소문 사후에 그의 아들들이 권력 다툼을 하면서 고구려는

    패망의 길을 걸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경제&금융 분야, 재무설계 분야, 인문&예술(한국사) 분야 전문가, 지식iN '절대신 등급' 테스티아입니다.

    * 고구려는 북쪽으로는 수, 당을 포함하여 수많은 이민족(돌궐 등)에 시달려야 했으며, 그러면서 백제, 신라까지 견제를 하여야 했습니다. 즉, 영토가 넓었던 것이 오히려 독이 된 케이스이며, 외교에서도 신라에 막판에 밀림으로써 삼국을 통일하는 주체가 되지는 못했습니다. 가장 컸던 이유는,, 연개소문 사후 내부 권력투쟁으로 인한 국가적 일체감 상실이었다 이렇게 봐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