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서당에 가려면 돈을 내야갈수 있었나요?
아주 오랜 옛날에는 학교가 없고 서당이 있었잖아요 그런데 서당을 가려면 돈을 내고 다녔는지 궁금합니다
가난하면 서당을 갈수 없었나요?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서당에 다니려면 돈을 내야 했습니다.
신입생은 벼 반섬 재학생은 10 말을 받았다고 합니다.
돈이 없으면 빨래를 대신해주거나 하였답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서당에 처음 입학 하는 날에는 훈장님에게 입학금을 내듯이 술,닭,옷감 등의 예물을 갖추는 것이 하나의 예의 였고,훈장과 그 가족의 생활비는 학동의 부모들이 부담하여 봄과 가을에 곡식을 내는 것이 관례였다고 합니다. 독신인 훈장에게는 학부모들이 의복,식사,세탁도 주선해 주었다고 하지요,서당의 수업료는 강미(講米),공량(貢糧),학세(學稅),학채(學債)등으로 불렸으며,보통 서당의 강미는 대개 초학자(신입생)에게는 1년에 벼 반 섬 (5말),그 이상의 학생들에게는 한 섬 (10말)을 받았다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훈장과 그 가족의 생활비는 학부형들이 분담하여 봄·가을로 곡식을 보내는 것이 관례였다
- 백과사전에서 발췌
서당은 보통 가세가 풍족한 집안에서 독선생(과외선생님)을 앉혀놓고 약간명의 이웃 자제들을 무료로 동석하여 수업하는 경우, 은퇴한 선비가 교육취미나 소일을 위하여 학동을 가르치거나, 동네주민이나 친구선비의 요청으로 학동을 받아 수업하는 경우, 향중의 몇몇 유지 또는 한 마을 전체가 조합하여 훈장을 초빙하여 자제를 교육시키는 경우, 그리고 훈장 자신이 생계를 위하여 자기가 직접 설립하는 경우 등이 있었다고 합니다.
서당에 처음 입학하는 날에는 훈장에게 술, 닭, 옷감 등의 예물을 갖추는 것이 하나의 예의였고 훈장과 그 가족의 생활비는 학동의 부모들이 부담하며 춘추로 곡식을 내는 것이 관례였고 독신인 훈장에게는 의복, 식사, 세탁도 주선해 주었습니다.
조선시대 서당의 수업료는 강미(講米), 공량(貢糧), 학세(學稅), 학채(學債)등으로 불렀고 보통 서당의 강미는 대개 초학자(신입생)에게는 1년에 벼 반 섬, 그 이상의 학생들에게는 한 섬(10말)을 받았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