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이성계 이후 왜 조선은 여진족들을 회유도 안했을까요?

태조 이성계의 지지기반에는 상당한 여진족들도 있었는데요, 그런 여진족들이 태조 이후에는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타도 대상이 되었을까요? 성리학 기반의 조선이라 여진족은 단순한 오랑캐로만 여겨서 그렇게 된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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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조 이성계 사후 조선은 여진족을 배척하거나 타도 대상으로 삼은것은 아니며 이는 성리학적 화이관 영향도 있엇지만 실상은 달래고 통제하는 기인제와 사대교린 이라는 섬세하고 치밀한 회유 정책 펼쳤습니다. 태조 이후 태종과 세종 당시 여진족에게 관직과 토지 하사, 여진족에게 필요한 식량이나 소금 등 무역소 설치, 조선 국경 밑에 거주하며 조선의 보호 받으며 조공 받치는 여진족 집단 관리 했었습니다. 이후 조선은 확고한 국경선 확정 짓는 과정에 기존 해당 지역에 살던 여진족 밀어내거나 섭외 했었고 여진족 연합체 막기 위해 분할 통치 전략도 펼쳤습니다. 성리학 측면에서 여진족은 오랑캐 불리며 열등한 민족으로 인식하고 있었지만 교화 시킨다 명분으로 여진족 지도자들에게 조선에 복종하도록 도구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