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신공양은 우리나라에도 있었나요?
과거 고대문명에 사람을 제물로 받쳤다고하던데 우리나라에서도 인신공양에대한 기록이 남아있나요? 인신공양은 왜 발생하게된문화인가요?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한반도에서 신라, 백제, 가야, 조선시대 때 인신공양의 역사가 있습니다.
신라는 2000년 여름 국립경주박물관 미술관 부지의 발굴에서 우물 바닥 가까운 곳에서 유골이 발견됩니다. 학자들은 이 8~9세 어린아이 유골을 9세기 통일신라 제의의 희생물로 추정하였습니다. 삼국시대 330년에 축조된 전라북도 김제 벽골제에서 조사 때에 여러 인골들이 나와서 땅기운을 다스리는 풍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가야시대에는 창녕 송현동 가야고분군의 10대 순장소녀, 경상북도 고령 지산동 대가야 고분군의 무더기 순장 흔적 등이 있습니다.
조선시대에서는 400여년 전 청송에서는 선비 윤반을 살리기 위해서 동자승이 항아리에 담겨서 못 속에 들어갔다는 인신공양 민담이 전해집니다. 김필 선생이 축조한 장흥 어인보는 보의 둑이 잘 터지니 산 사람을 제물을 바쳤다는 설화가 있으나 인과응보를 담은 내용도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한국에서의 인신공양은 주로 왕실이나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사의 형태로 이루어졌어요. 예를 들어, 신라 시대에는 왕실에서 관리하는 우물에서 어린아이의 유골이 발견되었으며, 이는 9세기 통일신라 제의의 희생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또한, 경주 월성 해자에서 발굴된 유골들은 신라인골로, 인신공양 제례의 실체를 보여주는 첫 사례로 여겨집니다.
인신공양에 대한 사실은 설화로도 나타납니다. 설화는 <심청전>의 근원설화(根源說話)가 되기도 하였어요. <심청전>에 영향을 끼친 '거타지' 설화도 역시 인신공양을 줄거리로 삼고 있습니다. 거대한 토목공사를 할 때에 어떤 사람을 물 속이나 흙 속, 혹은 그 재료 속에 파묻는 것을 인주(人柱)라 하고, 인신을 제공하는 인신공여는 이를 소재로 한 설화로 인신공양 설화의 한 종류입니다. 인신공여라는 설화는 신라의 성덕대왕신종 전설(에밀레종 전설)이 유명합니다.
안녕하세요. 권기헌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신라시대에 선덕대왕신종을 만들면서 인신공양을 했다는 설화가 전해지며 이 때문에 에밀레종이라고 불리기도 하죠.
그리고 순장이라는 풍습으로 왕이나 귀족이 죽으면 이들을 사후세계에서도 수발을 들기 위해 하인들을 같이 묻었는 풍습이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