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의 메리 여왕이 결혼을 3번 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스코틀랜드의 메리 여왕은 왕족인데 결혼을 3번이나 했다고 하는데요.
결혼 상대는 누구 였나요?
그리고 결혼을 이렇게 여러번 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메리 여왕은 3번 결혼했습니다. 프랑수아 2세(1558년 결혼 / 1560년 사망)는 메리는 외할머니인 앙투아네트 드 방돔 백작 영애에 의지하여 프랑스 발루아-앙굴렘 궁정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왕세자인 약혼자 프랑수아 2세와 16세에 결혼했어요. 그러나 2년만에 프랑수아 2세가 요절합니다.
1561년 스코틀랜드로 돌아온 메리는 결혼 압박에 시달렸다. 엘리자베스 1세가 더들리 경을 추천했는데, 진지한 제안은 아니으나 결혼합니다. 단리 경 헨리 스튜어트(Henry Stuart, Lord Darnley, 1565년 결혼 / 1567년 사망)은 헨리 7세의 증손자라 엘리자베스 1세 이후 유력한 왕위 계승자였으며, 메리 스튜어트와는 같은 할머니를 둔 사촌 관계였습니다. 둘 사이에 아들 제임스6세를 낳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이 사이가 멀어지고 리치오 암살 사건으로 인해 메리 여왕과 단리 경의 사이는 완전히 틀어져 버렸으며, 이후 단리경은 폭살됩니다.(1567)
이 시점부터 보스웰 백작의 영향력이 급속하게 커졌습니다. 보스웰 백작 제임스 헵번(1567년 결혼 / 1578년 사망)와 메리와 보스웰은 당시 유부녀, 유부남였는데, 난데없이 메리는 보스웰과 결혼을 발표합니다. 그러나 스코틀랜드의 귀족과 백성들은 부도덕한 메리에 등을 돌립니다. 결국 메리는 제임스에게 양위하고 영국으로 도망칩니다. 스웨덴으로 추방당해 투옥된 보스웰은 1578년 죽습니다.
안녕하세요. 양미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메리여왕은 다섯 살 무렵, 프랑수아 2세와의 혼인이 체결되어 프랑스에서 화려한 유년기를 보냈으나, 그녀는 1560년 미망인이 되어 그 다음해 귀국했습니다. 이후 단리 경 헨리와 재혼하지만, 1567년 단리 경은 암살당했습니다. 단리 경의 암살은 제임스 햅번의 소행으로 추정되지만, 이 일을 무마시킨 제임스와 1567년에 재혼했습니다. 아무래도 정치적인 목적이 컸던 혼인들입니다.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메리여왕의 일생은 말 그대로 부와 권력을 향한 초고속 행진이었습니다. 태어난 지 6일만에 스코트랜드의 왕이 되었고 여섯살 때 프랑스의 왕세자비가 되었으며 열일곱살에 프랑스 왕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와 2세가 사망하자 과부가 되어 스코틀랜드로 돌아오게 되었고 단리 경과 두번째 결혼하고 제임스 6세를 출산하여 차후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를 다스릴 후계자를 낳았으나 단리 경과는 소원해집니다. 보스웰 경과 세번째 결혼을 하게 됩니다. 남편의 살해자로 의심되는 보스웰과의 결혼을 26명의 스코틀랜드 귀족들이 반대하여 군대를 일으켰고 메리여왕은 잉글랜드로 도망쳐 엘리자베스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후에 엘리자베스 여왕 암살사건에 연루되어 처형되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