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3.1운동의 영향으로 1919년 4월 기독교 천도교 불교 대표 20인이 주축이 되어 한성정부가 수립되었으며 1919년 4월 11일에는 중국 상하이에서 김구 이승만 이동녕 등을 중심으로 한 상해임시정부가 수립되었습니다. 일본군들의 집요한 파괴공작에도 상해임시정부는 항주 남경 광주 류주 중경 등으로 험난한 여정을 거치면서도 그 명맥을 유지하여 1945년 8월 15일 조선 광복군을 지휘하여 조선 독립전쟁을 수행하고자 했으나 갑작스러운 미국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 투하로 일제가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면서 그 뜻을 이룩하지 못하고 연합군에 의해 해방됨으로써 우리의 주도권을 확보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인애국단 등을 통해 대한민국 독립을 위해 끝까지 노력한 점은 높이 칭송받아야 할 업적이었습니다.
3.1운동의 성과와 한계로 독립운동의 구심점이 필요했습니다. 이에 서울에 한성정부, 연해주에 대한국민의회, 상하이에 임시정부가 만들어졌고 한성정부의 법통과 대한국민의회의 조직을 더해 통합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상하이에 만들어집니다.
임시정부는 광복 전까지 독립운동을 계속하지만 침체와 위기가 있었습니다. 초기 이승만정부의 외교중심활동이 벽에 부딪혔고 이승만은 탄핵되고 집단지도체제가 만들어지다 1930년대 한인애국단의 활약 등으로 활기를 찾았으나 일본의 상하이 사변 및 중일전쟁으로 임시정부는 충칭까지 옮기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