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가사문학은 왜 시조와 다르게 긴 서사를 담을 수 있었나요?

조선시대 가사문학이 시조보다 훨씬 긴 분량으로 이야기나 정서를 담아냈다고 배우는데, 이 장르가 왜 이렇게 자유로운 길이와 형식을 가질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3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서호진 전문가입니다.

    가사문학은 시조의 반작용 이었으니까요.

    "자유가 방종이 되면 규칙이 생기고, 규칙이 억압이 되면 자유를 꿈꾼다." 전세계 어디서나 일어나는 일이 문학의 흐름에서도 있던 거죠.

    ​초기의 '시조'는 3장 6구라는 엄격한 규칙(정형)으로 절제미를 추구했습니다. 하지만 이 틀이 고착되며 창작의 자유를 억압하게 되자, 사람들은 형식을 깨고 길이를 늘린 '사설시조'와 '가사' 문학을 만들어 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한없이 길어지며 자유를 누리던 가사 문학 역시, 결국 4음보의 연속이라는 새로운 규칙 안에 자리 잡았다는 것입니다. 유행과 답습은 필연적인 일이죠.

    ​무한한 방종을 경계해 다시 정형을 찾고, 그 정형이 답답해지면 또다시 자유를 향해 틀을 깨는 과정이 바로 학문이 발전하는 반복의 역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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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택된 답변
  • 안녕하세요. 박에녹 전문가입니다.

    가사 문학이 긴 내용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덨던 것은 줄 수에 제한이 없는 연속체 형식이었기 때문입니다. 시조는 3장 6구라는 정해진 틀 안에 정서를 압축해야 했지만 가사는 4음보의 운율만 유지하면 행수를 얼마든지 늘릴 수 있었습니다. 시와 산문의 성격을 모두 가진 덕분에 여행기, 역사적 사건, 일상생활 같은 복잡한 서사를 구체적으로 풀어내기 적합했습니다. 노래하듯 일기 편한 운율을 지키면서도 수필이나 소설처럼 긴 내용을 자유롭게 써 내려갈 수 있는 구조적 특징 때문에 방대한 내용의 이야기를 쓸 수 있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이기준 전문가입니다.

    시조의 경우에는 글자수까지 엄격하게 제한되어있는 정형시입니다 따라서 작가의 의도에 따라 늘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가사문학의 경우 4음보 (3-4조)의 연속체인 율문이기는 하나 서정, 서사, 교술의 성격을 띤 장르문학으로서 산문과 율문의 성격을 모두 가진 시가입니다. 조선전기 사대부 계층의 강호가사 같은 형태에서는 길이가 그렇게까지 길지 않았지만 전체 글자수에 대한 제한이 없기에 조선후기의 기행가사, 내방가사나 평민가사의 경우 서사 및 교술적인 내용이 더해져서 형식이 길어지게 되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