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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동명왕과 유리왕은 성씨가 왜 다른가요?

고구려의 시조 주몽, 그러니까 동명왕은 고씨인데, 2대 유리왕은 해씨라고 하는데, 부자지간인데 왜 성씨가 다른가요? 실제로 두 사람은 부자지간이 맞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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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간여행자75
    시간여행자75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구려 태조인 주몽은 원래 해모수의 아들입니다.

    그래서 성이 해씨가 맞습니다. 따라서 그의 아들인 유리가 해씨인 것입니다.

    하지만 이 해씨는 주몽이 부여에 있을 때 쓴 성씨입니다.

    주몽이 졸본으로 넘어와서 졸본을 넘보던 말갈족을 물리치고, 졸본 및 인근 지역을 통합하여 고구려를 건국 하고, 그 고씨로 바꾸어 시조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고구려 태조가 되기 이전에는 해씨였다가 고구려 건국 후 고씨가 되었으니 고구려 건국 전 첫번째 부인에게서 낳은 유리(비류, 온조는 두번째 부인인 연씨가문의 소서노에게서 낳은 자임)는 해씨 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부자지간이 맞습니다.

    해당 내용은 삼국사기, 삼국유사, 동사강목, 동국통감 및 중국의 사서 등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신현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르면 말씀하신대로 동명왕은 고씨(高氏) 였고 유리왕은 해(解氏)로 혈통이 다른데요. 이는 고구려의 왕실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초기에는 유리왕계인 해씨가 왕권을 잡아 왕위를 계승해왔었고 후에 태조왕이 되어서는 고씨가 왕위를 받아 계승한 것이지요.

    이들은 씨족집단이 다른 것이었고 정쟁으로 인한 왕위찬탈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고씨가 왕위를 계승한 후에도 왕실의 권위를 위해 이전 왕족인 해씨를 개국시조로 모셨다고 하네요. 이를 볼때 실제 부자관계라기보다는 조상처럼 모시면서 그런 대우를 한게 아닌가 추측됩니다.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시조 동명성왕은 성이 고씨(高氏)이고 이름이 주몽(朱蒙) <추모(鄒牟) 또는 중해(衆解)라고도 하였다.>이다.

    유리명왕(琉璃明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유리(類利)이다. 혹은 유류(孺留)라고도 하였다. 주몽의 맏아들이고, 어머니는 예씨(禮氏)이다.
    23년(서기 4) 봄 2월에 왕자 해명(解明)을 태자로 삼고 나라 안에 크게 사면하였다

    대무신왕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무휼(無恤)이고 유리왕의 셋째 아들이다.

    민중왕은 이름이 해색주(解色朱)이고 대무신왕의 아우이다.

    모본왕은 이름이 해우(解憂)<또는 해애루(解愛婁)라고도 하였다>이고 대무신왕의 맏아들이다.

    태조대왕의 이름은 궁(宮)이다. 어렸을 때의 이름은 어수(於漱)이며, 유리왕의 아들 고추가 재사(再思)의 아들이다.

    삼국사기(본기)에 유리명왕, 대무신왕의 성을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또한, 고구려의 27명의 왕 중에 동명성왕만 성이 고씨라고 기록했고, 나머지 왕들은 이름만 기록했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과연 해명과 해색주와 해우의 해를 성이라고 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눈여겨봐야 할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유리는 어려서부터 고씨라는 성을 쓴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유리가 고주몽이 자신의 아버지라는 것을 알고 고구려로 간 것은 18, 19세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18, 19세가 되기 전까지 유리는 고씨를 성으로 쓰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때 유리는 해씨를 썼을 수도 있습니다-물론 추측임.
    한가지 확실한 것은 유리가 고씨라는 성을 접한 것은 18, 19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