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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문어80
조용한문어8023.10.30

고구려 2대왕은 주몽의 아들이 아닌가요?

고구려의 시초는 주몽이잖아요.

성이 고씨 이구요.

근데 고구려 2대왕이 주몽의 아들이 아닌가요?

고구려 2대왕의 성씨는 해씨라고 하는데 어떻게 된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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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4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10.30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구려의 시조인 '주몽'도 '해모수'의 아들이라고 알려져있어 주몽은 당연히 아버지의 성을 따라 '해 씨'여야 하지만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주몽의 성을 '고 씨'라고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위의 두 '고려시대'에 집필된 역사서들을 제외한 중국, 일본의 역사서에는 주몽의 성을 따로 기입하지 않았습니다. 주몽의 아버지인 '해모수'는 '해 씨', 주몽은 '고 씨', 주몽의 아들과 후손들은 '해 씨'라고 기록되어 있기에 결국 고씨나 해씨나 같은 가문이 아닌가 추정하고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구려를 건국한 동명성왕은 부여에 있을 때 예씨부인과의 혼인으로 아이를 낳았습니다. 주몽이 대소의 위협을 피해 피해 졸본으로 달아나자 예씨부인 혼자 아이를 키우게 됩니다. 동부여의 왕인 대소의 위협 속에서 자라났으며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 이르자 어머니와 함께 고구려로 탈출합니다. B C19년 아버지를 찾아 부여에서 고구려로 입국하였고 그해 4월 동명성왕을 만나 태자로 책봉됩니다. 태자로 책봉된 후 소서노와 비류 온조 등과 대립하다가 비류가 고구려를 떠나 백제를 건국하였고 유리는 동명성왕 사후에 2대 유리명왕으로 등극합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유리왕은 삼국시대 고구려 제 2대 왕으로 아버지 고주몽을 찾아 기원전 19년 4월 동부여에서 고구려로 와 태자에 책봉, 동명왕이 사망하자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의 아버지 주몽의 성씨는 해 (부여에서 쓴 성씨), 고( 고구려 건국 후 사용한 성씨)로 나뉩니다.


  • 안녕하세요. 장세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구려 초기의 왕위 계승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습니다. 백제의 비류와 온조가 친형제가 아니듯이, 고구려의 주몽과 유리도 부자지간이 아닙니다.


    혹자는 유리가 주몽을 찾아와 부러진 칼을 신표로 내밀어 이를 맞추자 피가 나왔다는 설화를 토대로 정변설을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른 견해로는 오히려 이들이 한 집단에서 나온 같은 혈통임을 드러낸다고 보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두 견해 모두 주몽과 유리를 부자지간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이겠지요.


    한편 «삼국유사» 왕력에 따르면 고구려 제2대왕 유리는 성씨가 "해"로 나옵니다. 반면 동명왕 주몽은 "고"씨라고 언급되죠.


    그 이유는 고구려 초기 역사가 소수림왕 시기에 편집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시기에 고구려 왕의 계보를 정리하면서 계루부 고씨를 중심으로 편집됐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주몽은 고씨로 정리됐으나 그 뒤 왕들에는 해씨의 흔적이 암암리에 남아있게 된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