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익현 선생은 1905년 을사늑약 체결에 대항하기 위해 1906년 정읍, 순창 지역에서 제자 임병찬 등과 의병 봉기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최익현 선생과 임병찬 등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자진 체포되어 쓰시마섬으로 압송되었습니다.
그가 자진 체포도니 이유는 일본군과 충돌 과정에서 발생한 폭력으로 희생을 줄이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의병 진압을 위해 출정한 한국군과 충돌할 경우 동족끼리 희생이 발생할 우려도 고려한 것입니다. 게다가 한국군이 황제가 보낸 진압군으로 유교적으로 충을 거스리는 것이라 판단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