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중헌가문의 몰락은 어떻게 시작됐는지?
안녕하세요? 고려 무신정권에서 가장 길게 60년동안 이어온 최충헌 가문이 있는데 이 최중헌 정권은 어떤 계기로 몰락하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이기중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최씨정권은 제4대 집권자인 최의에 이르러 무너지고 말았다. 최의가 권력을 계승한 후 불과 11개월만인 고종 45년(1258)의 일이었다. 최의는 최항의 심복이었던 金俊·柳璥 등에 의해 살해되었던 것이다.
김준·유경 등이 최의를 제거하게 된 원인은, 그들이 최의로부터 정치적으로 소외된 데에 있었다 한다. 그렇다고 이것으로 최씨정권의 몰락 이유가 모두 설명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4대 62년 동안 지속되었던 최씨정권의 몰락을 단순히 최의와 김준·유경 등의 인간관계에서만 구할 수는 없는 것이다. 최씨정권을 지탱해 온 여러 요인들이 와해되는 과정에서 최씨정권은 몰락했다고 이해된다.
최씨가의 마지막 집권자인 최의는 불과 11개월을 집권했을 뿐이었다. 따라 서 최씨정권의 몰락을 가능하게 한 요인들이 최의집권기에 갑자기 나타났다고 보기는 어렵다. 몰락의 징후는 그 이전부터 최씨정권에 내재되어 있었음이 분명한데, 주목되는 것은 최항의 권력 계승을 계기로 이에 대한 불만이 최씨정권 내부 인물들 사이에 심각하게 표출되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최씨정권의 붕괴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최항정권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최항은 애초부터 최이의 후계자로 지목된 것은 아니었다. 최이가 처음에 그의 후계자로 내정한 인물은 그의 사위인 김약선이었던 것이다. 김약선의 후계자 지명과 함께 최이는 그의 서자인 萬宗과 萬全을 松廣寺에 출가시켰다. 그들이 여기에 불만을 품고 난을 일으킬까 두려워한 때문이었다 한다. 만전은, 최항이란 이름으로 환속하기 전까지 禪僧이었던 것이다.
최항이 최이의 아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후계자가 되지 못하고 김약선을 피해 출가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데에는 그가 嫡子가 아닌 서자였으며, 더구나 그의 모계가 천했던 점이 큰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그는 최이가 총애하는 기생출신 瑞蓮房의 소생이었던 것이다. 이미 언급하였듯이, 최충헌정권을 성립시킨 무인들은 비교적 좋은 가문의 출신들이었으며, 이들의 자손들 역시 최씨정권 아래에서 크게 출세하였다. 또한 소수의 재상가 가문에서 다수의 문신 재추를 배출시키기도 하였다. 즉 최씨정권의 지배세력은 여전히 좋은 가문의 출신들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최씨정권 아래서는 기존의 신분질서가 존중되었다고 판단해서 좋을 것이다. 따라서 기생의 소생인 최항은 당시의 정치적 지배세력으로부터 환영받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점도 쉽게 짐작된다.
한편 앞 절에서 이미 살펴 본 바와 같이 김약선이 최이의 사위가 될 수 있었던 데에는 가문의 배경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더구나 그의 처는 최이와 河東鄭氏 사이의 소생이었다. 하동 정씨는 정숙첨의 딸인데, 정숙첨은 최충헌·최이집권기의 정치적 실력자로서 관직이 평장사에 이르렀다. 따라서 김약선은 최이의 사위라는 점과 아울러 자신의 가문 배경을 이용하여 당시의 정치세력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