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조선 시대 이만강의 최후는 어떻게 되었나요?

조선 시대는 철저한 신분제 사회라

노비들은 관직으로 갈 수가 없었는데

조선 영조 때 이만강이라는 인물이

신분을 속여서 과거 급제까지 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20년 넘게 속여서 관직에서 일을 했다는데

무엇을 계기로 신분을 위조한 것이 걸린 것인가요?

그리고 최후는 어떻게 되었나요?

노비 출신이지만 당시 과거 시험에 급제할 정도면

기본적인 머리는 상당히 좋았을 것 같은데

신분 위조에 대해서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났었는지 궁금합니다

1개의 답변이 있어요!

  • 이만강은 전의현 관청의 노비였는데, 엄택주라는 이름으로 1725년 과거에 합격하여 관직에 진출했습니다. 그는 연일현감과 제주판관 등을 지내며 오랫동안 관직 생활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신분 위조는 1745년(영조 21년)에 밝혀졌습니다. 고향과 가족 관계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그가 양반 엄택주가 아니라 노비 이만강이라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영조는 이를 단순한 신분 사칭이 아니라 아버지와 조상을 바꾸고 임금을 속인 중대한 범죄로 보았습니다. 그 결과 이만강은 과거 합격 기록이 삭제되고, 본래 신분인 노비로 되돌아갔으며, 흑산도에 유배되었습니다. 그리고 이후 1755년 흑산도에서 괘서 사건에 연루되어 심문을 받던 중 사망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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