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김헌창의 난 당시 무열왕계 진골의 신분을 왜 강등시키지 않았나요?

김헌창은 태종 무열계의 신분이고 왕위 싸움에서 패한다면

결국 난을 일으켰는데

당시에 패배를 하고 자결을 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의 아들인 김범문이 다시 난을 일으켰고

이후 토종 무열계 진골에서 6두품으로 강등되었습니다

처음 김헌창의 난도 결국 역모인데

왜 김헌창의 난을 제압한 뒤에 신분을 그대로 두었는지 궁금합니다

1개의 답변이 있어요!

  • 김헌창의 난은 신라 하대 무열계 출신 진골 귀족의 대표적 반란입니다. 신라가 진압 후에도 골품을 강등하기 보다는 무마하는 형태로 봉합하였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 이유는 신라 하대 왕위 장탈전이 빈번한 혼란한 시기로 김헌창 가문의 위세를 무시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만큼 왕권과 지배층의 세력이 중대에 비해 약화된 상황이라 평가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처음부터 그 세력을 한꺼번에 제거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이후 김범문의 재반란이 일어난 뒤에야 강한 처벌을 시행됩니다. 또한 신라말 지방 호족 세력이 성장하고, 지방 분권화 현상이 나타나면서 훗날 강릉 지방의 지방 세력으로 뿌리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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