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창의 난은 신라 하대 무열계 출신 진골 귀족의 대표적 반란입니다. 신라가 진압 후에도 골품을 강등하기 보다는 무마하는 형태로 봉합하였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 이유는 신라 하대 왕위 장탈전이 빈번한 혼란한 시기로 김헌창 가문의 위세를 무시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만큼 왕권과 지배층의 세력이 중대에 비해 약화된 상황이라 평가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처음부터 그 세력을 한꺼번에 제거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이후 김범문의 재반란이 일어난 뒤에야 강한 처벌을 시행됩니다. 또한 신라말 지방 호족 세력이 성장하고, 지방 분권화 현상이 나타나면서 훗날 강릉 지방의 지방 세력으로 뿌리내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