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혁명 당시 키요틴은 공포주의적 상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 탄생은 인도주의적 취지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본래 혁명 이전 귀족의 사형 집행은 참수형으로 비교적 고통이 적고, 명예로운 죽음으로 간주했지만 평민은 교수형, 화형, 사지절단 등으로 고통스러운 죽음이었습니다. 같은 사형이리도 귀족은 고통없이 신속하게, 평민은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프랑스 혁명 직후 1791년 의사 출신 의원 기요탱이 모든 범죄자의 참수형, 단순한 기계와 평등한 죽음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후 형법 개정으로 모든 사형이 참수로 통일되고, 단두대가 완성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단두대는 프랑스 혁명 기간 동안 루이 16세를 비롯해 약 1만~4만명 가량이 처형되었습니다.
즉, 단두대는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계몽주의적 이상의 구현에서 출현했으나 혁명의 적을 처단하는 공포 정치의 상징이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