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8년 명나라가 고려에 철령 이북 지역에 대해 영유권을 주장하며 철령위 설치를 통보했습니다. 고려 조정은 이에 맞서 요동 정벌을 결정하고 이성계에게 5만명의 병사를 주어 출정케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성계는 4불가론을 내세워 요동정벌을 부당성을 역설했습니다. 국력 소모, 장마와 질병, 내부 불안, 명과의 전쟁 위험 등을 내세웠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이성계가 위화도에 도착한 뒤에도 장마와 병사들의 탈영이 계속되고 병장비 손상, 사기 저하로 원정이 불가능하게 되자 결국 회군을 결정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