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명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초에 한양을 건설한 뒤 화재를 예방하기 위하여 인접한 가옥과 가옥 사이에 방화장(防火墻)을 쌓고, 요소(要所)마다 우물을 파고 방화기기(防火器機) 등을 설치한 바 있다.
1426년(세종 8) 2월에 화적(火賊)의 방화로 큰불이 일어나자, 곧 금화도감을 설치하여 화재의 방지와 개천과 하수구의 수리 및 소통을 담당하게 하고, 화재를 이용한 도적들을 색출하게 하였다. 관원은 제조(提調) 7인, 사(使) 5인, 부사(副使)·판관(判官) 각각 6인을 두었다.
금화군은 정식대원이 아닌 군인이나 관청 노비들로 구성된 비상 대기조였습니다.
1467년 세조때가 이르러 멸화군으로 이름이 바뀌고 더욱 전문화된 소방대원의 모습을 갖췄습니다.
정원은 50명이고 24시간 상시 대기를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