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핫뉴스실시간 인기검색어
아핫뉴스 화산 이미지
아하

학문

역사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

흥선대원군이 쇄국정책 쓴이유 문호개방

보살입니다.문을 열려고하지 않은이유가 갑자기 외국문물에 적응이안되서?일본의강압적 태도에 받아들이기가 어려웟을가요 ??

55글자 더 채워주세요.
2개의 답변이 있어요!
  • 권기헌 전문가
    권기헌 전문가
    가람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

    흥선대원군이 척화비를 세우면서까지 서양과의 교역을 막았던 것은 1840년 청나라가 아편전쟁 등으로 서양세력에 굴복한 것을 보면서 조선은 더 강력하게 막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며, 심지어 오페르트 라는 프랑스 상인이 통상을 요구했으나 거부 당하자 흥선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의 묘를 도굴하려 했던 사건이 결정적이었죠.

  • 흥선대원군은 고종이 1863년 즉위하자 10년동안 섭정하였습니다. 그는 대외적으로 이양선이 출몰하여 통상을 요구하자 거부하였습니다. 그런데 사실 러시아의 남하를 막으려고 프랑스와 동맹을 추진하려 하였지만 결렬되자 오히려 병인박해를 일으켜 천주교 신자와 선교를 처형했습니다. 이후 이를 보복하려 병인양요를 일으키고, 미국의 제너럴셔먼호 사건, 신미양요를 일으키자 쇄국의 의지가 강화되었습니다. 특히 1868년 오페르트 도굴사건으로 더욱 강화되었으며, 1871년 척화비를 세워 의지를 표방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