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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우리나라 최초 신부 김대건이라는 인물의 가장 큰 업적은 무엇인가요?

영화 탄생을 우연히 보게되었고 김대건이라는 인물을 알게되었습니다. 조선시대 우리나라 최초 천주교 신부 김대건이라는 인물의 가장 큰 업적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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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김대건은 조선 최초의 가톨릭 사제(신부)로,[9] 세례명은 안드레아다. 성 피에르 모방 신부의 천거로 마카오에서 유학하며 신학을 공부해 사제 서품을 받고 귀국하였으나, 단 1년밖에 사목생활을 하지 못하고 붙잡혀 군난을 받고 25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1846년, 병오박해). 1984년 한국의 동료 순교자 102명과 함께 시성됐다.

    출처: 나무위키 김대건 안드레아

  • 단정한낙지284
    단정한낙지284

    안녕하세요. 신현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영화 탄생은 말씀하셨다 시피 조선시대 최초 천주교 신부를 다룬 영화입니다. 이 김대건이라는 인물은 물론 종교적으로 가톨릭을 알리려고 했지만 김대건은 그저 천주교라는 종교를 떠나서 당시 여러가지로 조선의 닫혀있는 세계에서 구시대를 타파하고 근대시대를 알리는 선각자로서의 역할이 매우 컸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선각자의 역할에는 김대건 신부의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 그 사랑하는 나라에 사는 조선 백성들을 아끼는 마음이 돋보이는 인물로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낸 사람이라고 보고 싶습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김대건은 개화파 세력 천주교의 전파와 대한민국의 교육을 위해 힘쓴 인물입니다.

    성사를 주는 동안 교리를 설명하고 가르치며 진지하게 성사를 집전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김대건(金大建, 1821-1846)은 한국인 최초의 로마 카톨릭 사제이자 , 순교자로, 세례명은 은 안드레아입니다. 2021년 유네스코 세계기념인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김대건은 1845년 10월에 조선에 들어온 페레올 주교의 지시로 선교사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항로를 알아보았다. 김대건은 연평도 앞바다에서 선교사가 들어와서 전도할 수 있는 항로가 있음을 알아내었고 1846년 천주교 선교사들이 조선에 들어와서 전도할 수 있는 항로를 그린 지도를 중국으로 가는 중국어선에 넘겨주려다가 연평도 부근에서 순찰하던 관헌들에게 체포되어 모진고문을 받았다. 중국어선을 관헌에서 징발하는 것에 항의하다가 신분이 드러났다고 한다.일부 대신들은 김대건의 박학다식함을 아깝게 생각하여 구명운동을 벌였으나, 김대건이 신학공부와 사목을 위해 외국인들과 접촉한 사실로 처벌해야 한다는 영의정 주장에 따라 그해 9월15일 조선에서 금하던 천주교를 믿는다는 죄로 참수형을 선고받았고, 이튿날 새남터에서 천주교 사제로 참수되어 26세의 나이로 순교의 길을 걸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교회 사학자들은 김신부가 짧은 사제생활 안에서, 한국 천주교회사 안에서 남겨놓은 활동을 「서간문 등의 저술활동」과 「조선 입국로 개척 노력」, 「서품 후 사목활동」 등으로 설명하고 있다. 우선 저술분야에서는 생전에 기술한 31통의 서한과 「훈춘여행기」 등을 꼽을 수 있다.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김대건은 한국인 최초 가톨릭교회의 사제입니다. 독실한 천주교 집안에서 성장하였습니다. 15세에 모방 신부에 의해 신학생으로 발탁되어 마카오에서 공부하였고, 1844년 부제, 1845년 상해로 건너가서 완당신학교 교회에서 신품성사를 받고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가 되었습니다.이후 1846년 체포되었고, 같은 해 8월 16일 순교하였습니다. 1925년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그를 복자로 1984년에는 성인으로 선포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845년은 한국 교회 최초의 방인 사제인 김대건 신부가 사제품을 받고 귀국한 역사적인 해이다. 세계 교회 역사상 그 유래가 없이 자생적으로 설립된 한국 천주교회는 그 해 김대건 신부의 사제 서품과 귀국으로 비로소 명실상부한 교회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기해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