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연산군이 갑자사화 이후 삼사를 어떻게 했나요?
연산군의 갑자사화 이후 언론기능이 축소됐다고 배웠습니다. 삼사중 하나인 사간원이 폐지되었다고 알고있는데 이 외에 연산군이 홍문관이나 사헌부는 어떻게 했는지, 어떻게 언론기능을 축소시켰는지 궁금합니다
3개의 답변이 있어요!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연산군은 갑자사화 이후 삼사의 홍문관과 경연을 폐지시키고 사헌부의 정5품 관직인 지평을 없애며 사헌부 기능을 축소시킵니다. 또한 사간원까지 없애며 자신을 비판하는 언론 삼사를 무력화시켰습니다.
안녕하세요. 양미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연산군이 갑자사화나 무오사화 등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은 사형, 유배, 파직, 좌천 등의
처분을 하였고 이에 삼사를 비롯하여 신료들의 간언은 극도로 위축된 것입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연산군은 사림과 훈구 세력을 억누른후 사간원, 사헌부, 홍문관 등 삼사의 언로를 막고 독단적인 정치를 자행하였으며, 가혹한 고문과 공포정치를 일삼았다고 합니다. 그 결과 박원종, 성희안 등이 일으킨 중종반정 으로 폐위되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