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인 가구니까 육인용이면 되겠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 인용수는 가족 수를 뜻하는 단위가 아닙니다. 접시와 컵과 수저를 묶은 한 사람분 세트를 몇 세트 넣을 수 있느냐를 나타내는 규격이에요. 세 식구가 하루 두세 끼만 먹어도 세트 수로는 금방 열 개를 넘어갑니다. 식기세척기는 나올 때마다 돌리는 기계가 아니라 하루치를 모아뒀다가 한 번에 돌리는 기계라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실제 만족도를 가르는 건 접시 개수보다 냄비와 프라이팬입니다. 육인용급 소형은 내부 높이가 낮아서 큰 냄비나 웍, 지름 넓은 프라이팬이 잘 안 들어갑니다. 그러면 제일 씻기 싫은 것들만 손에 남아요. 그럴 거면 왜 샀나 싶은 상황이 여기서 나옵니다.
전기와 물이 더 들지 않겠냐는 걱정도 많이 하시는데 오히려 반대인 경우가 많습니다. 큰 용량으로 하루 한 번 돌리는 쪽이, 작은 용량으로 두세 번 돌리는 쪽보다 총 사용량이 적습니다. 세척기는 돌릴 때마다 물을 데우는 데 전기를 가장 많이 쓰기 때문에 횟수가 곧 요금이거든요.
그럼 육인용은 언제 나은가 하면, 설치 조건이 안 될 때입니다. 싱크대 상판 위에 올려놓는 형태는 배관 공사 없이 쓸 수 있고 자리도 적게 먹습니다. 주방이 좁아서 십이인용을 놓을 폭이 안 나오거나 세입자라 하부장을 손대기 곤란한 상황이면 육인용이 현실적인 답입니다.
그래서 고민 순서를 바꾸시는 걸 권합니다. 인용수를 먼저 정하지 마시고 놓을 자리부터 재보세요. 십이인용급은 대체로 폭 육십 센티 자리와 급수 배수 그리고 전용 콘센트가 필요합니다. 싱크대 하부장을 하나 들어낼 수 있는지, 아니면 베란다나 다용도실 쪽에 놓을 자리가 있는지를 먼저 확인하시면 선택지가 저절로 좁혀집니다.
정리하면 자리가 나오면 십이인용, 자리가 안 나오면 육인용입니다. 가족 수가 아니라 공간이 결정하는 문제예요. 참고로 십이인용을 쓰시게 되면 예열과 건조까지 포함해 두세 시간씩 걸리는 코스가 기본이니, 잘 때 돌려놓고 아침에 꺼내는 식으로 쓰시면 시간이 걸린다는 단점은 거의 느끼지 않으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