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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도화지113
하얀도화지11323.06.12

우리나라는 언제부터 '원'이라는 화폐단위를 사용했나요?

안녕하세요

제가 알고 있기론 예전에 우리나라 화폐단위가 '원'이 아니라 전 아니면 환으로 알고 있는데요

언제부터 '원' 단위를 사용 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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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6.13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원(圓)'은 구한말 일본제일은행권의 국내 통용(1902년)이래 쓰인 단위로, 해방 이후 최초의 한국은행권(1950년 7월)에서도 쓰였으며, 1962년 6월 제3차 통화조치 때 채택한 이래 우리나라 돈의 기본단위로 되어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62년 6월 12일 단행된 통화개혁을 이래로 지금까지 한국 돈 단위 원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의 화폐사에 있어서 처음으로 한글로 된 화폐단위를 채택하게 되었다는 데 중대한 의의가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 이전에는 환(圜, 원이라고도 함)이 화폐단위로 사용되고 있었는데, 이때 신화(新貨)와 구화(舊貨)의 교환비율은 1:10이었다.


    ‘1962년의 통화개혁’은 같은 해 시작된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위한 산업자금을 조달하기 위하여 단행되었던 것이지만, 이 개혁은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오히려 악성 인플레이션이 진행되었다. 이를 계기로 경제계나 유통계가 극심한 혼란에 빠지는 경우를 제외하고서는 함부로 통화개혁을 단행하여서는 아니된다는 귀중한 교훈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그 이후로 강력히 추진되어 온 경제개발계획으로 경제성장을 이룩하였다. 일반적으로 한 나라의 화폐는 곧 그 나라의 국력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생각되고 있다. 우리 나라가 ‘원’이라는 화폐단위를 채택한 이래로 괄목할만한 경제성장을 이룩하여, 오늘날 ‘원’화는 국제경제나 국제금융에 있어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의 화폐제도는 1953년부터 1962년까지는 환단위였으며 1962년 박정희정권에서 환을 원단위로 바꿔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10환=1원으로 교환하여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박순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고려시대에 은병(銀甁)·해동통보(海東通寶)·쇄은(碎銀)·소은병(小銀甁) 등이 주조·발행되었지만, 일반적인 교환수단으로 널리 사용된 것은 포화(布貨)나 곡화(穀貨), 특히 미화(米貨)였다. 이들 사이의 교환비율은 문헌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전기(前期)에 정부불환지폐라고 말할 수 있는 저화(楮貨)가 발행되었고, 또 동(銅)으로 조선통보(朝鮮通寶)·전폐(箭幣)와 같은 화폐가 주조, 발행되었지만 일정한 화폐 단위가 확립되어 있지는 못했던 것 같다. 이를테면, 저화는 장(張)으로 헤아리고 있었으며, 더구나 일반 민간에서는 역시 포화나 곡화, 특히 미화가 물품화폐로서 일반적인 교환수단으로 유통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 화폐 단위가 확립된 이후 그 변천과정을 보면 다음과 같다.


    조선 후기에 들어와서, 숙종연간(1675∼1720)에 상평통보(常平通寶)가 분산적으로 널리 주조, 발행되어 18세기에 들어와서는 국경지방을 제외하고는 상평통보가 거의 전국적으로 일반적인 교환수단으로 유통되었다. 그래서 전근대적인 화폐형태이기는 했지만, 일단 화폐경제 단계에 들어섰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상평통보는 흔히 엽전(葉錢)이라고 불리게 되었는데, 이는 개수화폐(個數貨幣)인 상평통보를 민간에서 한 닢[葉]·두 닢 등으로 헤아린 데서 유래된 것이다. 『속대전』 국폐조(國幣條)에 “국폐에 동전을 사용한다.


    동전에는 ‘常平通寶’라는 각자(刻字)가 있고, 1문(文)의 무게는 2돈[錢]5푼[分]이다. 100문은 1냥(兩)이 되고 10냥은 1관(貫)이 된다. ”는 화폐산식(貨幣算式)이 정해져 있었다.


    그러나 『목민심서(牧民心書)』 제2부 율기육조(律己六條) 제5장 절용(節用)과 『만기요람(萬機要覽)』 재용편(財用篇) 전화조(錢貨條)에서 보는바, 실제로는 문과 냥 사이에 전(錢)이라는 단위가 존재하고 있어 ‘1관=10냥=100전=1,000문’이라는 십진법에 의한 화폐산식이 적용되고 있었다. 여기에서 기본이 되는 화폐 단위는 냥이었다.


    1876년(고종 13) 개항을 지나 1883년 7월 상설적인 조폐기관으로 전환국(典圜局)이 설립되었으며, 1886년에는 전환국이 독일에서 신식 조폐기기를 수입하여 1887년 10월 경성전환국(京城典圜局)이 새로 발족되었다. 그 당시 전환국에서 조폐기기와 함께 각인(刻印)을 도입하였는데, 그 종류는 14종에 달하였다.


    이때 우리 정부는 환(圜, 또는 원, 본고에서는 환을 사용함)이라는 화폐 단위를 냥과 함께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이전에 사용하고 있던 전이라는 단위가 빠져 있었다. 이들 중에서 실제로 경성전환국에서 제조된 것은 1환 은화와 5문과 1문의 적동화 등 3종이었는데, 이들은 소량에 그치고 발행되기까지는 이르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