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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y천사1004
Jy천사100423.05.10
영국 프랑스의 100년 전쟁은 어떻게 일어났는지?

안녕하세요? 유럽의 영원한 라이벌 영국과 프랑스의 100년전쟁이 일어났었는데요 왜 어떤 계기로 전쟁이 났는지 궁금합니다..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5.24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백년 전쟁은 중세 서유럽의 잉글랜드 왕국과 프랑스 왕국 사이에서 1337년부터 1453년까지 116년 동안 벌어진 전쟁이다.

    중세 유럽의 역사구분을 간단히 나누었을 때, (서로마 멸망)-프랑크 왕국-바이킹 지배-십자군 원정에서 이어지는 큰 변환점이다. 잉글랜드와 프랑스의 분리를 시작으로 유럽 국가들의 국경선과 민족성이 정립되기 시작하여, 서로 다투는 과정에서 자본의 이동을 통하여 여러 가지 발전을 일으키는 대대적인 변혁의 시작점으로 평가받는 전쟁이다.[1]

    보통 가스코뉴 지방에서 벌어진 전면전을 기준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이름은 백년 전쟁이지만 양국이 116년 동안 지속해서 싸우지는 않았고, 단지 처음 선전포고를 한 1337년 이래 완전한 종전 선언이 발표되기까지 116년이나 걸렸다. 중간에 몇 차례 휴전과 종전이 있었다.

    비슷한 개념으로 17세기 말엽부터 19세기 초엽까지, 9년 전쟁(일명 팔츠계승전쟁)-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7년 전쟁-미국 독립전쟁-프랑스 혁명-나폴레옹 전쟁 등으로 이어진 양국 간의 충돌을 제2차 백년 전쟁(1701~1815)[2]으로 부르기도 하나, 잉-프 만이 아니라 다른 유럽 국가들도 주도적인 역할을 차지하는 전쟁들은 잘 통용되지 않는다.

    '정면승부를 고집하는 프랑스 기사단 vs 온갖 얍삽한 방화 & 노략을 자행하는 잉글랜드 약탈군들'이 이 전쟁 초기의 이미지였다. 사실 이때 프랑스는 흑사병 이전을 기준으로 인구수 1600만 이상의 엄청난 강대국이었고[3], 잉글랜드는 인구가 프랑스의 절반도 안되는 4~500만 명인 데다 이웃 왕국인 스코틀랜드한테도 털리고 자신들끼리 싸우느라 분열을 반복했다. 그러나 이때의 실전 경험으로 쌓은 용병술을 통하여 프랑스군과 승리할수 있었는데 잉글랜드군은 프랑스 내부를 휘저으며 돌아다녔고, 프랑스의 도시들을 잿더미로 만들며 큰 피해를 입혔다.

    그러나 프랑스군도 비교적 빠른 시기인 장 2세 치세부터 군제개혁을 시작해서 1360년대 이후에는 오히려 기동전술을 잉글랜드군보다 잘 구사했고, 대규모 야전군을 편성해서 한타를 걸어오는 잉글랜드군을 청야전술과 게릴라전으로 괴롭혔다. 1370년 퐁발랑(Pontvallain) 전투에서는 프랑스군이 잉글랜드군을 격파하면서 크레시 전투 이후 24년간 지속된 잉글랜드군의 야전 무적 신화를 종결시켰다.

    이때의 잉글랜드-프랑스 대립이 근세기 유럽의 분쟁의 대부분으로 이어지는 것은, 잉글랜드-프랑스 통합 왕조라는 집단이 분리되는 것을 시작으로 유럽이 각자의 국경선과 민족 성향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지속적인 분쟁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결과는 잉글랜드와 프랑스의 분리, 두 라이벌의 외교 싸움에서 촉발되는 유럽의 각종 분쟁, 그리고 이탈리아 도시들이 양 국가를 지원하면서 얻은 엄청난 황금으로 일으키는 르네상스라는 거대한 발전의 시대로 이어진다.

    한마디로 십자군 전쟁 이후 근대 유럽이 보여주는 거의 모든 변화의 프롤로그를 장식하는 첫 번째 사건이라고 평할 수 있을 정도이다.

    전쟁의 원인은 왕위 계승권, 가스코뉴 지배권, 플란데런 지배권, 스코틀랜드 문제 등입니다.

    출처/; 나무위키 백년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