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을미사변은 1895년 일본 공사 미우라 고로의 지휘 아래 일본군과 낭인들이 건청궁에 난입해 명성황후를 시해한 사건입니다. 사건이 새벽 6시에 감행돼 목격자가 많은 탓에 사건 전모는 알려졌습니다. 다만 가장 설득력있던 이유는 삼국 간섭 후 일본은 한반도에서의 기득권은 내놓을 수 없다고 버텼다고 하는데요. 최소 1개 대대 병력을 주둔시켜 한반도의 전신선을 계속 관장하려 했던 것이라고 합니다. 통신의 관할이 한반도 지배의 핵심이 될 것임을 간파했던 것이다. 하지만 조선 정부가 이를 반대했고 그 배후가 명성황후였다고 합니다. 그게 가장 튼 이유가 아니 였나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