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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한발발이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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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는 왜 어린나이의 딸을 일찍 시집보내려고 한 것인가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는 10살도 채 되지 않은 어린 여성을 시집 보내는 풍습이 있었다고 하던데요.

왜 어린나이의 딸을 일찍 시집보내려고 한 것인가요?

    3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는 성리학을 이념으로 삼았으며 숭유억불 정책을 폈고, 이에 따라 혼인 풍습도 변화하였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일찍 결혼하는 조혼과 늦게 결혼하는 만혼의 폐해를 막기 위해 혼인하는 나이의 제한을 두었습니다. 조혼은 고려시대에 처녀를 몽골에 바치는 공녀제도를 피하기 위해 딸을 일찍 시집보낸 데서 비롯되었으며, 제사를 모시는 후손을 빨리 얻기 위함도 있었다고합니다. 민간에서는 장가나 시집을 가지 못한 처녀 총각이 죽으면 저승에 가지 못하고 이승을 떠돈다고 여겼고 이 또한 혼인을 서두른 이유 중에 하나였다고합니다. 그리고 조선시대에도 조혼이 계속되자 혼인 할 수 있는 나이를 정하고, 지키지 않으면 벌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유학을 중시하던 조선이었기에 주자가례에 기준을 두고 남자는 16세부터 30세, 여자는 14세부터 20세가 혼인에 적합하다고 여겼고 실제로 <경국대전>에는 남자나이 15세, 여자나이 13세가 되면 혼인하는 것을 허락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와 조선의 여인들은 고려 중기 부터 있어온 공녀 제도로 부터 벗어 나고자 혼인을 비교적 일찍 하게 됩니다. 원나라는 고려로부터 나이 어린 시집 안간 여인들을 노비로 잡아 갔는데 결혼을 하면 여기서 면제 될수 있으므로 비교적 일찍 결혼 하였고 이러한 풍습은 조선 에도 이어 지는데 조선에는 공녀 제도가 없어지긴 했지만 대신 연산군 때는 채홍사라는 전국의 미녀를 궁녀로 만드는 것에서 벗어 나고자 조혼이 유지 된것으로 보입니다.

    •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과거에는 인간의 평균 수명이 40세 이하였고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만13세 이상이면 모든 생식기관이 발달하여 번식을 할 수 있는 상태가 되기 때문에 자연의 섭리에 따라 당연한 현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