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유성룡이 쓴 징비록은 어떻게 일본에서 유명해진 것인가요?
임진왜란을 거쳐가며 유성룡이 안동에서 쓴 징비록은
임진왜란이 끝나나고
유성룡이 사망한 뒤 대략 100년정도 되어서
조선의 땅이 아니라 일본에서 엄청 유명해졌다고 합니다
징비록이 어떤 과정으로 일본으로 넘어가게 된 것인가요?
징비록이 당시 일본 사회에 어떤 충격을 준 것인가요?
55글자 더 채워주세요.
3개의 답변이 있어요!

전문가 답변 평가답변의 별점을 선택하여 평가를 해주세요. 전문가들에게 도움이 됩니다.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징비록은 17세기 후반 조선통신사가 일본에 갈때 밀반출 되어, 1965년 <조선징비록> 이란 제목으로 처음,출간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박세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징비록은 조선 뿐 아니라 일본에서까지 전해져 널리 읽혀졌다고 합니다. 초량 왜관을 통해 일본으로 유입된 징비록은 「2권본」으로 1695년 일본 교토의 야마토야(大和屋)에서 야마토야 이베에(大和屋伊兵衛)가 일본어 훈독을 달아 간행하였다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양미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징비록은 근세 일본인들에게 임진왜란을 알려 주는 주요한 사료로 인식되어 많이 인용되었기에 유명해졌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