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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따운안경곰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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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룡이 쓴 징비록은 어떻게 일본에서 유명해진 것인가요?

임진왜란을 거쳐가며 유성룡이 안동에서 쓴 징비록은

임진왜란이 끝나나고

유성룡이 사망한 뒤 대략 100년정도 되어서

조선의 땅이 아니라 일본에서 엄청 유명해졌다고 합니다

징비록이 어떤 과정으로 일본으로 넘어가게 된 것인가요?

징비록이 당시 일본 사회에 어떤 충격을 준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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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의 답변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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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징비록은 17세기 후반 조선통신사가 일본에 갈때 밀반출 되어, 1965년 <조선징비록> 이란 제목으로 처음,출간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박세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징비록은 조선 뿐 아니라 일본에서까지 전해져 널리 읽혀졌다고 합니다. 초량 왜관을 통해 일본으로 유입된 징비록은 「2권본」으로 1695년 일본 교토의 야마토야(大和屋)에서 야마토야 이베에(大和屋伊兵衛)가 일본어 훈독을 달아 간행하였다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양미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징비록은 근세 일본인들에게 임진왜란을 알려 주는 주요한 사료로 인식되어 많이 인용되었기에 유명해졌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