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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한발발이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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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우리나라에서는 마약 복용 문제가 있었나요?

중국은 아편중독 사건도 있었을만큼 과거 마약으로 인한 사회 국가적인 문제가 발생했었잖아요.

혹시 그럼 조선시대 우리나라 사회에서 마약 복용이 일어났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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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향약집성방>(1433)에는 아편에 관련한 기록은 없고 앵자속과 양귀비의 열매의 껍질인 앵속각이 언급되었습니다. <동의보감>(1611)에는 아편의 약효와 제접을 기재하였습니다. 중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아직 아편의 흡연이 일반적이 아닌것 같습니다. 1840년 헌종실록에 아편 흡연의 해독에 관해 소개한 글이 실려있습니다.

    그런데, 1848년 3월 동지사의 화원 한사람이 아편연 취급 기구를 몰래 들여옫다가 발각되어 유죄에 처해진 사건이 있고, 1851년 3월 중국에서 돌아온 정사 권대긍 등이 중국의 아편중독 해독을 보고하면서 아편 유행 방지를 위해 국경 단속을 하여 아편 밀수를 막아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기록을 통해 조선은 아편에 대해 모르거나 널리 유행하지 않았으며, 단속 의지를 보이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까지만 하더라고 마약이라는 단어는 없었고 대신 시골에서 의원을 만나기 힘들어 가정에서 갑작스런 질병의 통증을 억제해주는 가정상비약으로 쓰이는 앵속(양귀비)가 있었습니다.

    앵속은 지금으로 피면 아편으로 주재료가 양귀비 였습니다.

    아편의 대한 최초 기록은 광해군 2년 완성된 동의보감인데 , 여기서 아편의 약효와 제법에 대해 나옵니다.

    약제 이외의 목적으로 아편을 흡연해 피해가 발생하는 모습이 처음 우리나라 정사에 등장한 것은 조선 후기 헌종 대부터로, 헌종실록 헌종 6년 3월 25일 기사에 청국 연경에 간 사신의 보고가 있는데, 당시 청국이 혼란을 겪는 원인을 서양인들이 들여온 아편 때문이라 적습니다.

    이 무렵부터 아편이 청국의 주민들에게 유입되면서 피해가 발생하는 모습을 목격한 조선 정부는 청국의 사정을 관찰하면서 점차 아편에 대한 경계 의식을 가졌습니다.

    국내 아편이 전파될 우려가 있는 사건이 발생하자 강력한 조치로 대응했는데, 헌종실록 헌종 14년 5월 9일 기사는 청국에 다녀오면서 아편 흡입 기구를 국내에 들여오다 발각된 박희영이라는 사람의 처벌에 대해 다룹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