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14살꿈많던아이
작곡가들은 왜 특정 조성을 특정 감정 표현과 연결시켰나요?
단조는 비극적, 장조는 밝은 느낌이라는 것 외에도 작곡가들이 특정 조성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고 배우는데, 이런 조성과 감정의 연결이 어떤 근거로 이루어졌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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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강경원 전문가입니다.
핵심부터 말씀드리면, 조성과 감정의 연결에는 하나의 객관적인 법칙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① 당시의 조율법, ② 악기의 물리적 특성, ③ 음역, ④ 작곡가·이론가들의 음악적 관습과 학습된 연상이 함께 작용했습니다.
1. 먼저 '장조 = 밝음'과 '특정 조성 = 특정 감정'은 조금 다른 이야기입니다
현대인이 느끼는
C장조 → 밝음
A단조 → 어두움
같은 장·단조의 정서적 차이는 상당히 일반적으로 나타납니다. 실제 실험에서도 같은 음악을 장조와 단조로 바꾸면 정서 평가가 달라지는 것이 확인됩니다.
그런데 이것과
D장조 = 승리·장엄
E♭장조 = 영웅적·장엄
F단조 = 어둡고 비극적
B단조 = 고통·절망
처럼 **'조성 하나하나에 성격을 부여하는 것'**은 별개의 역사적 현상입니다.
2. 바로크 시대에는 실제로 조성마다 '소리의 색깔'이 달랐습니다
이게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오늘날 피아노는 기본적으로 평균율을 사용하기 때문에 C장조를 D♭장조로 옮겨도 음정 간격의 구조가 거의 동일합니다.
그런데 바로크 시대의 하프시코드·오르간 등의 조율은 **불균등음률(unequal temperament)**이 많이 사용됐습니다.
그래서
C–E–G
와
D♭–F–A♭
가 이론적으로는 둘 다 장3화음이지만 실제로는 음정 간격이 미묘하게 달랐습니다.
어떤 조성에서는 3도가 조금 더 좁거나 넓어서 화음이 더 부드럽거나, 긴장되거나, 거칠게 들렸습니다. 당시 조율법이 조성마다 서로 다른 음향적 특징을 만들었다는 것은 음악사 연구에서도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러니까 당시 음악가에게는
C장조와 D♭장조가 단순히 높이만 다른 같은 장조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조성 자체가 음색의 차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3. 그래서 작곡가와 이론가들이 '조성의 성격'을 언어로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요한 마테존(Johann Mattheson)**입니다.
1713년 그의 저서에서 각 조성에 성격을 부여했습니다. 당시 문헌들을 보면 예를 들어 C장조와 D장조를 기쁨·환희·장엄함 등과 연결하는 식의 설명이 등장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학자들끼리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E장조를
샤르팡티에 → 다투는 듯하고 시끄러운 성격
라모 → 웅장하면서도 부드러운 성격
처럼 서로 다르게 설명했습니다.
즉,
“E장조는 과학적으로 반드시 이런 감정을 일으킨다.”
라는 식의 보편법칙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당시 음악가들이 특정 조성과 특정 정서를 연결해서 듣고, 말하고, 작곡하는 문화가 형성되어 있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합니다.
4. 작곡가가 그 연상을 적극적으로 이용했습니다
이 부분이 특히 중요합니다.
작곡가는 단순히
"이 조성이 슬프니까 선택해야지."
라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이 곡에서 표현하려는 정서에 어울리는 조성을 선택한다”
는 방식으로 생각했습니다.
바로크 시대의 작곡에서는 음정·화성뿐 아니라 조성, 리듬, 빠르기, 선율, 장식음, 카덴차 등을 함께 이용해서 특정한 '정서(Affekt)'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따라서 조성은 일종의 정서적 색채판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5. 그런데 재미있는 반전이 있습니다
당시 음악가들조차 "조성마다 고정된 감정이 있다"는 생각에 모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하인리헨(Heinichen)은 특정 조성에 사랑·우울·기쁨 같은 감정이 고정적으로 귀속된다는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조성의 성격을 적극적으로 이야기했던 마테존조차,
어떤 조성도 그 자체로 너무 슬프거나 행복해서 다른 정서를 표현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라는 취지의 단서를 달았습니다.
이것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즉,
조성 = 감정
이 아니라
조성 + 음역 + 화성 + 리듬 + 선율 + 악기 + 가사 + 연주법 → 정서
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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