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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훈한두꺼비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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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희 정승은 정말 검소하게만 살았나요?

어렸을 때 교과서에서 황휘 정승의 일화를 보면 문을 항상 잠그고 다녔던 방에 보물을 숨겨놓은 줄 알았는데 열어보니 황희 정승의 오래된 옷과 물품이 있었다는 검소한 모습을 엿볼 수 있는데요, 황희 장승은 한평생 검소하게만 살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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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황희정승 본인은 검소하게 살려고 노력했지만

    황희정승의 친척가족들에 의한 뇌물, 청탁, 가족비리로 매우 시끄러웠습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어느 지방 수령의 아들이 중앙의 벼슬자리를 황희에게 부탁하자 황희는 아들의 벼슬을 주는 대신 그에게 땅을 바치라고 요구, 땅과 벼슬자리를 교환하자는 거래라며 사대부들의 비난이 있었고, 황희의 비리 사건을 포착한 사헌부는 그 즉시 황희의 비리 사건을 조정공론으로 확대해 그를 탄핵, 삼사가 들고 일어났습니다.

    일련의 사건들로 보아 황희는 검소함을 실천한 인물로 평 받으나 부정적인 평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황희 정승은 청백리의 대표적 인물 입니다. 일평생을 가난 하게 살았고 그의 유명한 일화가 있는데 어느날 겨울 세종의 명을 받아 궁으로 들어서 세종과 대화를 하던 중에 세종이 입은 옷이 하도 허름해서 비단 10필을 내렸는데 백성들의 삶이 어려운데 자기 혼자 이렇게 좋은 옷을 입을 수 없다고 이를 한사코 거절 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 입니다.

  •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황희가 장인에게서 받은 노비는 3명이고 부친에게서도 재산을 크게 물려받지 못했는데, 상당한 노비와 재산을 보유하였음을 실록의 사관은 지적하고 있음. 매관매직과 형옥 관련 뇌물을 황희가 받곤 한다는 소문이 당시 있었음을 사관은 지적함. 실제 세종 10년에는 황희의 집에 뇌물을 보내려다가 걸려 파직당하는 박유와 같은 인물이 등장하기도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