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선대원군은 러시아의 남하를 견제하기 위해 프랑스와 동맹을 시도하기 하였습니다. 그러나 동맹 실패를 계기로 오히려 천주교도를 박해했으며, 이 때문에 병인박해가 일어납니다. 또한 제너럴셔먼호 사건, 오페르트 도굴 사건, 신민양요를 거치면서 흥선대원군은 서양 세력에 대한 반감이 더욱 커져 확대되었습니다.
결국 흥선대원군은 열강과 통상에 대한 반감이 커져 통상 수교 거부 의지가 커졌으며, 이를 척화비에 새겨 경계하였습니다.
18세기 유럽의 산업혁명 이후 서양의 이양선이 조선 연해에 자주 출몰하였습니다. 흥선대원군은 러시아의 위협을 막고자 프랑스 세력을 끌어들이려 하였으나 실패하였습니다. 여기에 천주교를 금지하여야 한다는 대신들과 유생들의 주장이 이어지자 흥선대원군은 천주교와 자신의 무관함을 과시라도 하듯 천주교를 대대적으로 탄압하기 시작하고 각지에 척화비를 세워 외세를 경계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