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오사화는 연산군 재위시기 1498년 사초문제로 초래된 사화입니다. 성종 때 이후 언론 기관으로 진출한 사림파의 세력이 커지지 훈구파들의 견제가 있었습니다. 훈구파를 대표하여 유자광은 김종직이 쓴 조의제문(세조의 찬탈과 단종 시해 비판 비유)을 그의 제자 김일손의 사초를 연산군에 비밀리에 알리면서 비롯되었습니다. 평소 서얼 출신인 유자광은 사림파의 대간들에 평소 견제를 받았으며, 특히 김종직으로부터 무시를 받았다고 느껴 앙심을 품었습니다.
결국 유자광의 개인적 앙심이 연산군의 마음을 흔들어 무오사화가 일어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