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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12.27

조선 세조때 사육신 사건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조선시대의 스스로 왕이 된 세조는 계유정난을 통해 성공적으로 쿠테타에 성공하는데요 이후 사육신 사건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 사건은 무엇이고 왜 일어났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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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던한굴뚝새285
    모던한굴뚝새28523.12.27

    안녕하세요. 이명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수양 대군은 세종의 둘째 아들이자 문종의 동생이었는데, 문종의 아들인 단종이 어린 나이에 임금이 되자 계유정난을 일으켜 권력을 잡았다. 2년 뒤인 1455년에는 단종을 몰아내고 임금(세조)이 되었다.

    사육신은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성원, 유응부 등을 가리킨다. 이들은 수양 대군 세력을 제거한 뒤 단종을 다시 임금으로 세우려고 했지만 끝내 실패하고 모두 죽임을 당했다.

    세종과 문종의 신임을 받았던 신하들은 수양 대군의 행동이 의롭지 못하다고 여겼다. 특히 문종으로부터 어린 세자를 잘 지켜 달라는 유언을 들은 신하들은 크게 분노했다. 당시 집현전 학사로 일하던 성삼문과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성원과 임금을 호위하는 별운검으로 일하던 유응부는 단종을 다시 임금으로 받들 것을 결의하고 기회를 노렸다.

    마침내 1456년에 명의 사신을 위한 잔치에서 세조와 그를 지지하는 신하들을 제거하기로 계획했다. 하지만 이 계획이 실행되지 못하자, 거사에 참여하기로 했지만 불안감을 느낀 김질의 밀고로 체포되었다.

    세조는 관련된 자들을 직접 고문하며 죄를 따져 물었다. 성삼문은 시뻘겋게 달군 쇠로 다리가 지져지고 팔이 잘려나가는 잔인한 고문을 받으면서도 당당했다. 박팽년은 그의 재주를 아낀 세조가 죄를 부인하면 살려 주겠다고 했지만, 되레 세조를 ‘나리’라고 낮추어 부르며 맞섰다.

    결국 성삼문과 박팽년, 유응부, 이개는 죄인의 다리를 두 대의 수레에 한쪽씩 묶어서 몸을 두 갈래로 찢어 죽이던 형벌인 거열형을 당했다. 하위지는 칼로 목이 베이는 형을 당했고, 유성원은 집에서 아내와 함께 자살했다. 이후 사육신 집안의 모든 남자는 죽임을 당했고, 여자는 노비가 되었으며, 집현전도 폐지되었다.

    사육신의 단종 복위 계획이 실천에 옮기기도 전에 탄로 나자 세조는 이들을 잡아 혹독하게 고문했다. 하지만 사육신은 잔인하게 처형되는 순간까지 당당하고 의연했다. 이들은 비록 역적으로 몰려 죽임을 당했지만 나중에는 최고의 충신으로 존경을 받게 되었다.

    사육신은 한동안 역적 취급을 당했지만, 제19대 임금인 숙종 때에는 충절과 의기를 높이 평가해 관직을 돌려주었다. 1691년부터는 노량진의 동산 묘소 아래에 민절 서원을 세워 제사도 지내게 했다. 1955년에는 서울시가 사육신 묘비를 세우고 묘역을 정비했고, 1972년에는 묘역을 서울특별시 유형 문화재 제8호로 지정했다.

    한편, 사육신처럼 죽임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벼슬을 버리며 단종에 대한 충절을 지킨 이맹전, 조여, 원호, 김시습, 성담수, 남효온(또는 권절) 등은 ‘생육신’이라고 부른다. 이 중 남효온이 쓴 《추강집》에 단종 복위 운동의 주도자로 사육신의 이름이 처음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