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황후는 시해후 시신을 찾았나요?
왜놈들이 궁궐로 침입해 그것도 일개 낭인들이
나라의 국모를 시해했는데 이후 장례시에 제대로
명성황후의 시신을 찾았나요...?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불타고 남은 뼈를 찾아서
다시 묻었습니다
보통 시신이 없는 사건에도 염습을 했다고 하는데
시신을 대신하는 옷이나 기타 등등을 넣고
시신을 묶듯이 꽁꽁 묶습니다
명성황후 시신도 찰흙으로 몸을 만들고
찾아낸 뼈를 붙인 다음
정말 시신인양 수의를 입혔습니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미우라 고로는 직접 왕후의 시체를 확인한 뒤 낭인들에게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시체를 불태워 없애라는 명령을 내려, 이후 미우라가 고종, 흥선대원군과 함께 3차 회담을 진행하는 동안 낭인들은 경복궁 뒤편 건청궁 동쪽 녹원으로 가서 시체에 기름을 끼얹고 불태웠으며 남은 유골은 궁궐을 순시하던 우범선이 우연히 발견, 연못 향원정에 넣으려 하나 훈련대 참위 윤석우가 혹시 황후의 시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를 수습해 멀리 떨어진 오운각 서봉 밑에 매장했고 뒷날 친일 내각은 윤석우를 비롯한 군부 협판 이주회, 일본어 통역관 박선 등을 무고하게 반역죄, 불경죄로 사형에 처했습니다.
안녕하세요. 박일권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훈련대 참위였던 윤석우라는 장교가 불에 탄 시신을 발견했습니다. 당시에는 그게 누구의 시신인지 몰랐습니다. 일단 발견한 것을 윗선에 보고했는데, 조선훈련대 대대장으로 있던 우범선이 향원정 연못에 버리라고 명령합니다.
그러나 윤석우는 돌아가신 분이 왕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연못에 넣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기록을 보면 하반신을 수습했다고 합니다. 시신이 온전하지 않았던 거죠. 그렇게 수습을 해서 오운각 서쪽 산 아래에 묻습니다. 그렇게 유해를 묻어놨다가 55일 후에 사망이 발표되자 그 시신을 가지고 와서 빈전으로 모시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