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이 이스라엘이 건국되고 나서 초대 대통령직을 요청받았으나 그는 "대통령을 할 만한 인물은 많습니다. 하지만 물리학을 가르칠 학자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 것이 제가 대통령직을 맡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라고 하면서 거절했다고 합니다. 결국 초대 대통령은 시오니즘 운동의 지도적 정치가, 화학자이며 제 1차 대전에 당시 영국에서 폭약제도에 쓰이는 아세톤의 대량 생산법을 개발하고, 벨푸어 선언을 발표하게 하는데 성공했던 하임 바이츠만 1949년 이스라엘 초대 대통령에 추대되었습니다.
그러나 1952년 초대 대통령 하임 바이츠만이 사망하고 또 다시 국회가 아인슈타인에게 2대 대통령직을 요청했을 때도 "저는 나이가 너무 많습니다. 저는 인간을 다룰말한 타고난 능력도 경험도 없습니다. 정치는 그냥 나의 친구일뿐 정치는 물리학보다 더 어렵습니다."라고 하며 거절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