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에 이탈리아 혈통들이 많네요

아르헨티나라는 국가에 대해 새로 알게된 사실이 있는데 아르헨티나에 이탈리아 혈통들이 많다는거요 아르헨티나는 스페인 지배하에 있던국가라 스페인 혈통들만 있을줄알았는데 이탈리아 혈통들도 꽤 있드라고요 대표적으로 우리가 아는 유명한 축구선수 메시도 국적이 3개거든요 아르헨티나,스페인,이탈리아 스페인 국적은 스페인 법에 따르면 스페인이 지배했던 국가의 사람이 스페인에서 몇년간살면 취득할수 있고 이탈리아 국적은 증조부가 이탈리아고 아르헨티나에도 이탈리아 출신들이 꽤많네요

3개의 답변이 있어요!

  • 이탈리아가 19세기에 유럽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중 하나였습니다

    통일 이탈리아 나라라는게 생긴것 자체가 1800년대 후반이고요

    그 전까지는 르네상스 시대처럼 도시국가들이 있었죠

    그래서 이탈리아 인들이 신대륙으로 이민을 많이 갔습니다

    미국에 피자와 스파게티가 생긴것도 그래서 그렇죠

    아르헨티나는 특히 농업을 위해서 유럽에서 많은 이민자를 받아들였고 이탈리아계 그리고 오스트리아계가 특히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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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택된 답변
  • 아르헨티나 인구의 약 50~60% 이상이 이탈리아계 혈통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 사이 벌어진 대규모 이민 파도 때문입니다.

    1. 아르헨티나의 적극적인 유럽인 이민 유치 정책

    19세기 중후반 아르헨티나 정부는 광활한 팜파스(평원) 지대를 개발할 노동력이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이에 정부는 헌법에 유럽인 이민을 장려하는 조항을 넣고, 토지 분양, 세제 혜택, 영주권 보장 등 적극적인 유인책을 펼쳤습니다.

    2. 당시 아르헨티나의 경제적 번영

    19세기 말~20세기 초 아르헨티나는 세계적인 농축산물 수출국으로 급성장하며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 중 하나였습니다. "미국보다 아르헨티나가 더 벌이가 좋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일자리를 찾으려는 이민자들이 대거 몰려들었습니다.

    3. 이탈리아 내부의 경제적·사회적 곤경

    이 시기 이탈리아는 통일 전쟁 직후로 국정이 불안정했고, 산업화 과정에서 밀려난 가난한 농민들과 이탈리아 남부의 경제적 빈곤이 심각했습니다. 기근과 가난을 피해 고향을 떠나야 했던 이탈리아인들에게 아르헨티나는 거대한 기회의 땅이었습니다.

    4. 미국과 브라질 대비 우수한 조건

     * 미국의 배척: 당시 미국은 가톨릭을 믿는 이탈리아인 이민자들에 대한 반감이 컸고 이민 제한 조치를 강화했습니다. 반면 같은 가톨릭 문화권인 아르헨티나는 문화적·종교적 진입 장벽이 낮았습니다.

     * 계절 노동(제비 이민): 남반구(아르헨티나)와 북반구(이탈리아)는 계절이 반대여서, 농한기에 아르헨티나로 건너와 수확철 노동을 하고 돌아가는 '제비(Golondrinas)' 이주 노동자들이 많았는데, 이들 상당수가 아예 정착을 선택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때문에 오늘날 아르헨티나의 스페인어 억양(리오플라텐세 방언)이나 음식 문화(피자, 파스타, 제라토 사랑), 성씨(예: 메시, 포체티노, 프란치스코 교황 등) 전반에 이탈리아의 색채가 매우 강하게 남아있습니다.

  • 맞아요. 아르헨티나에 이탈리아계 인구가 많은 것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이탈리아에서 대규모 이민이 이어졌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아르헨티나는 농업과 도시 개발에 필요한 노동력이 부족했고, 유럽 이민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어요. 이탈리아에서도 경제적 어려움과 일자리 문제를 피해 새로운 기회를 찾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부에노스아이레스와 항구 주변을 중심으로 정착한 이탈리아계 공동체가 커졌고, 여러 세대가 지나면서 음식, 가족문화, 말투와 생활습관에도 흔적이 남게 됐습니다. 아르헨티나의 스페인어 억양이나 일상 음식에서 이탈리아의 영향을 느낄 수 있다는 이야기도 많고요. 축구 문화가 강한 것도 이민자 공동체와 함께 형성된 지역 문화의 한 모습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