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인구의 약 50~60% 이상이 이탈리아계 혈통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 사이 벌어진 대규모 이민 파도 때문입니다.
1. 아르헨티나의 적극적인 유럽인 이민 유치 정책
19세기 중후반 아르헨티나 정부는 광활한 팜파스(평원) 지대를 개발할 노동력이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이에 정부는 헌법에 유럽인 이민을 장려하는 조항을 넣고, 토지 분양, 세제 혜택, 영주권 보장 등 적극적인 유인책을 펼쳤습니다.
2. 당시 아르헨티나의 경제적 번영
19세기 말~20세기 초 아르헨티나는 세계적인 농축산물 수출국으로 급성장하며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 중 하나였습니다. "미국보다 아르헨티나가 더 벌이가 좋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일자리를 찾으려는 이민자들이 대거 몰려들었습니다.
3. 이탈리아 내부의 경제적·사회적 곤경
이 시기 이탈리아는 통일 전쟁 직후로 국정이 불안정했고, 산업화 과정에서 밀려난 가난한 농민들과 이탈리아 남부의 경제적 빈곤이 심각했습니다. 기근과 가난을 피해 고향을 떠나야 했던 이탈리아인들에게 아르헨티나는 거대한 기회의 땅이었습니다.
4. 미국과 브라질 대비 우수한 조건
* 미국의 배척: 당시 미국은 가톨릭을 믿는 이탈리아인 이민자들에 대한 반감이 컸고 이민 제한 조치를 강화했습니다. 반면 같은 가톨릭 문화권인 아르헨티나는 문화적·종교적 진입 장벽이 낮았습니다.
* 계절 노동(제비 이민): 남반구(아르헨티나)와 북반구(이탈리아)는 계절이 반대여서, 농한기에 아르헨티나로 건너와 수확철 노동을 하고 돌아가는 '제비(Golondrinas)' 이주 노동자들이 많았는데, 이들 상당수가 아예 정착을 선택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때문에 오늘날 아르헨티나의 스페인어 억양(리오플라텐세 방언)이나 음식 문화(피자, 파스타, 제라토 사랑), 성씨(예: 메시, 포체티노, 프란치스코 교황 등) 전반에 이탈리아의 색채가 매우 강하게 남아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