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붕당 갈등이 대외 정책으로 번진 이유는 명분, 또는 의리가 곧 권력의 정당성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조선의 대외 질서는 사대교린이었습니다. 특히 임진왜란 이후 명에 대한 재조지은의 깊이가 컸습니다. 즉 명에 대한 의리를 저버리는 것은 유교적 도덕 관념에 어긋나는 행위로 인식되었습니다.
광해군은 당시 명과 후금 사이에 어느 편도 들지 않는 중립외교를 했는데, 이는 서인의 입장에서는 명을 배신하는 행위로 규정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1623년 이를 구실로 인조반정을 일으켜 광해군을 축출했으며,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의 요인이 되었습니다. 또한 효종 때 북벌론으로 이어졌습니다.